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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산행기

삼복더위에 다시 찾은 목포 유달산(儒達山)

by 새인1 2024.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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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일시 : 2024년 6월 11일(화요일)

◆ 산 행 지 : 전남 목포시 유달산(儒達山, 228m)

◆ 산행지 개요 : 산은 높지 않으나 산세가 험하고 층층기암과 절벽이 많아 호남의 개골산(皆骨山)이라는 별명을 가진 유달산(儒達山)은 예로부터 영혼이 거쳐가는 곳이라 하여 영달산(鍮達山)이라 불렸다. 동쪽에서 해가 떠오를 때 그 햇빛을 받은 봉우리가 마치 쇠가 녹아내리는 듯한 색으로 변한다 하여 놋쇠유(鍮)자를 써서 유달산(鍮達山)이라 하였는데, 구한말 대학자인 무정 정만조가 유배되었다가 돌아오는 길에 유달산에서 시회를 열자 자극을 받은 지방 선비들이 유달정(儒達亭) 건립을 논의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산 이름도 선비유(儒)자를 써서 유달산(儒達山)이 되었다. 높지 않은 산이지만 정상에 서면 목포시와 다도해의 조망이 압권이고, 산정에는 두 개의 봉수대를 설치하여 멀리 바다에서 들어오는 외적을 경계하였으며, 임진왜란 당시에는 전선을 가다듬고 왜적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의 충혼이 서려 있는 호남의 명산이다.

 

노적봉 - 마당바위 - 일등바위(정상) - 이등바위 - 삼등바위 - 소요정 - 자생식물원 - 달성공원으로 진행한 유달산 산행 렘블러 궤적이다.

 

식생 탐사를 위해 삼복 더위에 다시 찾은 유달산 산행을 노적봉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노적봉(露積峰)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바위 봉우리에 이엉을 덮어 군량미를 쌓아놓은 것처럼 보이게 하고, 백성들에게는 군복을 입혀 주위를 서성이게 하였으며, 영산강에는 백토가루를 뿌려 마치 쌀뜨물이 떠내려오는 것처럼 보이게 하여 왜군을 물리쳤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해발 60m의 암봉이다.

 

목포를 그려보고,

 

유달산 방향으로 올라간다.

 

뒤돌아 본 노적봉은 마치 사람의 얼굴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큰바위 얼굴'이라고도 한다.

 

유달산 정기를 받으러 올라간다.

 

 

복을 비는 사람 모습이라는 복바위는 쥐바위, 탕건바위라고도 한다.

 

내려다 본 노적봉

 

히말라야시다가 멋지게 이발을 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 예를 갖추고, 목포는 예로부터 우리 바다를 지키는 조선 수군의 거점으로 고하도와 노적봉에 장군의 흔적이 남아 있다.

 

무더운 날씨에 암릉 산행을 하기는 좀 힘들지만 천천히 올라간다.

 

유달산에는 총 5개의 누각(정자)이 있으며, 처음 만나는 대학루(待鶴樓)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1984년에 세워졌는데, '학을 기다린다'는 뜻에서 알 수 있듯이 삼학도(三鶴島)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삼학도를 굽어보고 있다.

 

멀리 삼학도가 보이고, 대학루 옆에 있는 오포대(午砲臺)는 목포 시민들에게 정오를 알리기 위해 1909년 4월에 설치했던 대포다. 처음의 포는 조선식 선입포로 1671년(현종 10년)에 제작되었으며 높이 5자, 구경 3치 5푼, 중량 733근으로 1회 발사하는데 화약 30량이 소모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이곳에서 200m 떨어진 노적봉의 시민종각 자리에 있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놓은 것으로, 경기도 광주에서 옮겨와 천기산에서 시험 발포했는데 발포 때마다 뒤로 밀려나가는 구식이었단다. 1913년 160원에 일본식 야포로 대치되었고, 이전의 조선식 대포는 일제의 송도 신사(목포시 동명동 소재)에 보관하던 중 일제 말기 태평양전쟁 물자로 사용하기 위해 왜놈들이 공출해갔다.

 

오포는 포탄이 없이 화약만 넣어 포를 쏘아 시민들에게 정오를 알리는 기능을 하였는데, 전쟁도구를 생활도구로 이용했다는 점이 특이하며, 지금도 목포의 토박이들은 이곳 오포 소리의 향수를 간직하고 있단다. 1986년 지방문화재자료 제138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이곳의 오포는 같은 해에 현충사 박물관에 전시된 천자총통을 복제한 모형이다.

 

남부지방 해안가에 자라는 졸가시나무

 

유달산 둘레길 시작점이라 표지석이 있는가 보다.

 

 

두 나무가 맞닿아 있는 소나무 연리지(連理枝)를 만난다.

 

이난영 가수의 '목포의 눈물'이라는 애잔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목포의 눈물 유래비는 '목포시 문화유산 제2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목포 출신 가수 이난영(1916~1965)이 부른 대중가요 '목포의 눈물'을 기념하기 위해 목포에서 음반판매사업을 하던 시민 박오주의 출연금을 토대로 1969년에 세운 노래비다. 1935년 발표된 목포의 눈물에는 '삼백년 원안풍(三百年 願安風)'이라는 노랫말이 등장하는데,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우회적으로 변경한 노랫말로 원래는 '삼백년 원한 품은'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삼백년은 임진왜란이 끝나는 시점을 표현한 것으로 이를 통해 목포사람들의 항일의식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당겨본 삼학도는 세 처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 한이 되어 세 마리의 학이 되어 섬으로 내려앉았다는 전설의 섬으로, 유달산, 영산강과 함께 목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 째 만나는 달선각(達仙閣)은 1958년 광복 13주년을 기념하여 건립한 누각이다.

 

삼학도 건너 영암땅도 바라보고,

 

목포시는 높은 건물이 별로 없어 조망이 시원하게 열린다.

 

목포에서 신안군 압해도로 건너가는 압해대교도 보이고,

 

달선각에 있는 오포(午砲)는 오정포(午正砲)라고도 하는데, 1908년 4월 1일 당시 일본 통감부가 한국과 일본의 1시간 시차를 무시하고 일본의 시간 12시에 맞춰 정오를 정하고, 우리 시간 11시에 정오를 알리는 포를 쏘면서 동경의 시간에 우리 시차를 맞추게 된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단다.

 

예덕나무가 꽃을 피우려고 한다.

 

일등바위를 향해 올라간다.

 

투구 바위 또는 코뿔소 바위란다.

 

세 번 째 누각인 유선각(儒仙閣)에 도착한다. 목포 개항 35주년을 기념하여 지역민들의 성금을 모아 1932년 10월 1일 시민의 쉼터이자 전망대로 건립하였는데, 이곳에서는 목포항에 출입하는 선박과 옛 개항장, 다도해의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무안의 문중 제각을 사서 옮겨와 목조 건물로 세웠고, 태풍으로 무너져 중건하였으나 비바람에 퇴락한 것을 1973년 현재의 콘크리트 건물로 다시 개축하였으며, 멋들어진 현판 글씨는 해공 신익희가 쓴 것이다.

 

멀리 영산강 하구둑이 보인다.

 

지난 번에는 하구둑 너머로 보이던 영암 월출산이 오늘은 미세먼지로 보이지 않는다.

 

주변에 왕자귀나무가 활짝 피어 반긴다. 유달산에 다시 온 목표이기도 하다.

 

바람의 쉼터에 도착하니 바람이 무척 시원하다.

 

갈 길이 바빠 다시 올라간다.

절에서 볼 수 있는 범종이 아닌 서양식 종바위라는데, 아래에서 보아야 한단다.

삼학도가 잘 보인다. 1973년 연륙(連陸) 및 간척공사로 현재는 내륙과 이어져 섬의 모습이 학처럼 보여 삼학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섬에는 무사와 그를 사랑했던 세 처녀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세 처녀가 그를 기다리다 학이 되었으나, 이를 알지 못한 무사가 쏜 화살을 맞아 모두 죽게 되었고, 학이 떨어진 자리에 세 개의 섬이 솟아나 삼학도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등바위 옆으로는 목포 해상케이블카가 연신 지나간다.

 

사랑이 이루어지는 자리에 도착하여, 이젠 지난 번 다녀간 자리에 왔다.

 

마당바위로 올라간다.

 

애기바위 또는 두 엄씨바위라 불리는 바위는 큰 엄씨가 애기를 업고 작은 엄씨에게 등을 돌리고, 작은 엄씨도 애기를 업었는데 큰 엄씨를 보려고 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그 옆에 있는 조대바위(낚시터바위)는 고하도 앞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워놓고 팔장을 끼고 앉아 조용히 사색에 잠겨있는 낚싯꾼 모습이란다.

 

케이블카가 지나가는 자리에는 지붕 있는 통로를 만들고,

이곳에서 마당바위로 올랐다가 일등바위로 간다.

 

네 번 째 누각인 관운각(觀雲閣)에 도착한다. 관운각은 목포 시민들을 위하여 2006년 5월 기업은행에서 기증한 것이다.

 

입석바위는 사각기둥 모양의 평범한 입석으로 보이지만 옆면에 길게 뻗어있는 상당한 규모란다.

 

역시 조망이 탁월하다. 목포 해상케이블카 유달산 스테이션이 내려다 보이고,

 

목포 신항도 보인다.

 

지난 번 다녀 온 고하도도 길게 뻗어 있다.

 

길다란 섬으로 이루어져 목포항의 중요한 방파제 역할을 하는 고하도(高下島)는 유달산 높은 산 아래 있는 섬이라 하여 고하도라 부르게 되었으며, 예전에는 보화도(寶化島), 고하도(高霞島), 칼섬 등으로 불렸다.

 

고하도 용머리 뒤로는 목포의 부속섬인 달리도, 외달도, 장좌도, 율도가 보이고,

 

이윽고 조망 맛집인 마당바위로 올라선다.

 

이웃한 엄지 척 유달산 정상인 일등바위 아래에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놈들이 그들의 종교적 침탈의 수단으로 유달산 바위 곳곳에 그들이 숭배하는 불상을 새겨 놓았는데, 그 흔적의 대표적인 예가 저기 보이는 부동명왕(不動明王)과 홍법대사상(弘法大師像)이다.

 

바위 암벽에 흉칙하게 새겨 놓은 인물은 부동명왕상(不動明王像)으로 부동명왕은 대일여래가 모든 악마와 번뇌를 항복시키기 위해 분노한 모습으로 나타난 형상으로 오대명왕의 하나란다. 1920년대 말 일본인들이 일본불교의 부흥을 위하여 일등봉 아래 암벽에 조각했다고 전해진다.

 

그 옆에는 홍법대사상(弘法大師像)이 있는데 나무에 가려 잘 안보인다. 홍법대사는 일본 진언종의 개조로 홍법은 시호이며, 중국 당나라로 건너가 유학하고 일본으로 돌아올 때 배를 타고 왔는데, 이때 부동명왕이 항해안전을 지켜줬다고 하여 홍법대사가 안치된 곳에는 어김없이 부동명왕이 함께 있단다.

 

앞 끝이 살짝 위로 올라간 모습에서 나막신 바위란다.

 

일등바위로 가면서 조망 한 번 봐주고, 목포의 명물 갓바위가 있는 입암산이 보이고,

 

시설물이 있는 양을산도 보인다.

 

시원한 숲속

 

일등바위로 가파르게 올라간다.

 

 

이등바위

 

정상으로,

 

지나 온 마당바위

 

유달산 정상인 일등봉은 유달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이며, 사람이 죽어서 영혼의 심판을 받는다 하여 율동(律動)바위라고도 한다.

 

정상으로 오르며,

 

일등바위 유달산(228m) 정상 인증

 

유달산은 일찌기 목포 주변의 고을과 다도해를 모두 조망할 수 있어서 정상에 2개의 봉수대를 설치하여 운영하였고, 신선이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을 갖추고 있으며, 바닷가에 위치하여 영혼이 거쳐가는 곳이라 하여 일찍부터 사람들이 우러러 보았단다.

 

가야 할 이등바위

트레킹이 멋졌던 섬 고하도

 

2012년에 완공된 목포대교는 왕복 4차선으로 목포의 북항과 고하도를 잇는 4.129km의 다리로 목포의 시조인 학 두 마리가 목포 앞바다를 향해 날아오르는 형상이다.

 

고하도 용머리를 당겨보고,

 

가까이로는 목포의 섬들과 멀리 신안의 섬들이 멋지게 조망된다.

 

발 아래로 보이는 목포해양대학교

지나 온 마당바위 방면

 

가야 할 이등바위

 

유달산 정상 조망

 

샛길로 빠졌더니 동굴이 나오고,

 

암봉에 올라본다.

 

암벽에 이상한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아마도 일제 시대의 유물이지 않을까?

 

샘물이 보이고,

 

내려와서 본 동굴 안쪽에 우물이 있다.

낡은 로프가 걸려 있고,

 

타포니 지형도 보인다.

마당바위쪽인 듯하다.

 

다시 올라가면서,

 

 

정상 아래로 다시 나온다.

 

다시 이등바위로 향한다.

유달산 산왕대성전(儒達山 山王大聖殿)터를 지나며,

 

가오리 바위를 지난다.

 

제주도를 오가는 유람선이 들어온다.

 

지나 온 가오리바위는 마치 거북이 같다.

 

샛길로 빠져 헤맸던 곳이 저 바위능선 같다.

지나 온 일등바위 정상을 당겨보고, 

 

얼굴바위를 지나간다. 얼굴바위는 그 아래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포효하는 남자의 얼굴이란다.

 

가야 할 이등바위

가파르게 내려서고,

 

이등바위 오르기 전에 있는 유달산 마지막 정자 소요정(逍遙亭)에서 간식을 먹으며 쉬어간다.

이등바위로 간다.

 

 

 

지나 온 일등바위 정상

 

이등바위 오르는 길에 환하게 반겨주는 왕자귀나무

 

 

지나 온 유달산 정상 일등바위를 돌아보고,

 

말오줌때는 열매를 맺고 있다.

 

이등바위를 오르며,

 

 

 

이등바위에서 바라보는 일등바위

 

이등바위에 있는 수도바위가 보인다.

 

이등바위에서 조망을 즐긴다.

 

수도바위는 정상의 평평한 터에서 용맹정진하는 수도자의 모습 같다고 하는데, 일명 똥바위로 불린다.

바로 아래 보이는 삼등바위

 

수도바위와 일등바위

 

삼등바위로 올라간다.

지나 온 이등바위

 

삼등바위 주변은 온통 왕자귀나무 군락이다.

 

조망도 살펴보고,

 

연신 오가는 케이블카

 

멀리 북항쪽을 바라보고,

 

삼등바위 주변 왕자귀나무를 탐한다.

 

삼등바위에서 바라보는 이등바위와 일등바위

 

저 삼등바위로 올라간다.

 

이등바위와 일등바위

 

 

고하도도 바라보고,

 

삼학도도 당겨보고,

 

유달산 삼등바위 조망

 

이젠 이등바위로 되돌아간다.

 

이등바위를 지나고,

 

소요정에서 달성공원 방향으로 내려선다.

 

자생식물원에 도착하니, 관람시간이 지나 문이 닫혔다.

 

철거민탑은 유달산 공원화사업의 일환으로 공원내 588세대의 초가집들을 대대적으로 철거하게 되었는데, 고향을 사랑하고 유달산을 아끼는 마음으로 정든 터전을 스스로 떠나간 철거민들의 애환을 달래고, 자연을 사랑하고 가꿀 줄 아는 새로운 시민의 기상과 의지를 다짐하고자 철거민들의 숨결과 상생이 깃든 철거가옥의 돌들을 모아 1979년에 2기의 탑을 세운 것이라 한다.

 

기념식수로 심어진 감태나무에 열매가 잔뜩 달렸다.

 

 

비파나무 열매가 탐스럽게 익었다.

 

달성공원으로 내려오니 3km에 2시간 48분 걸렸다.

 

도로 따라서 노적봉으로 돌아간다.

 

 

노적봉 공원으로 돌아와 짧은 산행을 마친다.

 

목포의 명물 갓바위를 보러 이동한다.

 

해상 데크길 따라서,

 

해상 부교로 연결된다.

 

 

 

갓바위는 목포8경 중 제4경인 입암반조(笠岩返照)라 하는데, 저녁 노을빛이 드리운 갓바위 부근의 아름다운 풍경을 말한다.

 

입암은 갓바위를 품고 있는 입암산(笠岩山)을 의미하며, 아버지를 잃은 슬픔으로 삿갓을 쓰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는 전설이 전한다.

 

갓바위와 입암, 그리고 갓바위 앞으로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 하구를 온통 붉게 물들이며 넘어가는 저녁노을의 풍경이 일품이라는데, 아쉽게도 흐린 날씨에 노을이 션찮았다.

 

이상으로 목포 탐방을 마치고 머나 먼길 달려 귀로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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