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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기험천하제일산(奇險天下第一山) 화산(華山)(1부)

by 새인1 2024.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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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보니 호텔 뒤로 화산이 보인다.

 

아침 일찍 주차장에 도착하니 아직은 썰렁하다.

 

상가지역을 지나고,

 

서봉 케이블카 타러 셔틀버스로 이동한다.

 

장공잔도 가려고 일찍 서둘렀더니 연휴 끝날이라 사람들도 많지 않아서 한가하였다.

 

셔틀버스를 타고 가면서 보이는 시골풍경

 

매표소에 도착하고,

 

저 패방에는 태화승경(太華勝景)이라고 새겨져 있다. 화산을 태화산이라고도 하는데, 화산의 빼어난 경치라는 뜻이다.

 

저 검은 패방에는 칙건(勅建) 존엄준극(尊嚴峻極) 천위지척(天威咫尺)이라 새겨져 있는데, 칙건(勅建)은 '황제의 명으로 지음'이란 뜻이고, 존엄준극(尊嚴峻極) 천위지척(天威咫尺)은 존엄하고 산처럼 높은 천자의 위엄이 가까이 있다는 뜻이란다.

 

케이블카 매표소도 한산하다.

 

케이블카 승강장으로 올라간다.

 

서봉케이블카는 2013년에 개통하여 화산의 험준한 산세를 단번에 느낄 수 있게끔 만들어졌는데, 프랑스 기술을 도입하여 5억 위안(900억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민들었으며, 길이는 약 4km이며 서봉으로 오르는데 20분 정도 걸린다.

 

꽃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화산(花山)은 오늘날에는 화려한 산이라는 뜻의 화산(華山)으로 불리고 있는데, 햇빛에 반사되어 은빛으로 빛나는 암봉의 모습이 수려하고, 깎아지르는 능선과 기암괴석들이 웅장한 봉우리들과 어우러져 압도적인 절경을 선사한다.

 

화산 서봉의 웅장한 자태

 

저기 보이는 굴은 옛날 원주민들 거주지라는데, 변변한 장비도 없는 그 옛날에 어떻게 저렇게 험한 곳에 굴을 뚫고 살았을까?

중간 정류장에서 로프를 갈아타고 올라간다.

 

화산 5봉 종주 트레킹을 하루에 진행하기에는 시간이 빠듯해서 대부분 케이블카를 이용하는데, 케이블카 운행도 대부분 오후 5시면 종료되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단다.

 

말 그대로 험준한 골짜기다.

 

물줄기는 션찮지만 매우 긴 폭포가 보인다.

 

서봉 암봉 옆으로 지나간다.

 

서봉 케이블카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산맥 사이에 뚫은 케이블카라고 한다.

 

오를수록 운해가 장관이다.

 

서봉 암벽을 순전히 사람의 힘으로 파서 만들었다는 상부 승강장이 보인다.

 

정말 대륙적 배포라 할 만하다.

 

뒤로는 운해가 펼쳐지고,

 

운해 뒤로는 삼국지에서 중요한 무대인 드넓은 관중평야(關中平野)라는데, 운해로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황하(黃河)의 지류인 위수(渭水)가 흘러 생산력이 매우 뛰어난 곳이라 고대 중국의 패자(霸者)는 관중땅을 차지한 세력이었다고 한다. 삼국시대(三國時代) 촉한(蜀漢)의 제갈량(諸葛亮)도 이 관중을 차지하기 위해 다섯번이나 북벌을 감행했지만, 결국 이곳을 차지한 한(漢)나라 유방(劉邦)이 천하를 거머쥐었다.

 

무사히 승강장에 내렸더니 암벽을 뚫어 만든 승강장이 마치 탄광에 들어온 듯하다. 이른 아침에 내려가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 사람들은 동봉에서 무박하고 일출맞이한 사람들이라 한다.

 

승강장을 나와서,

 

서봉방향으로 올라간다.

 

 

금방 서봉과 남봉 갈림길에 올라선다.

 

양인보 선생 독서처(楊仁甫先生 讀書處)는 명(明)나라 문인 양기(楊麒)가 여기서 독서를 했다고 한다.

 

북송(北宋)시대의 화가 곽희(郭熙)는 화산을 두고 화산다호봉(華山多好峰), 화산엔 아름다운 봉우리가 많다고 표현했고, 청나라 시인 위원(魏源)은 화산의 기암절벽이 가득한 것이 마치 돌기둥들이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화산여립(華山如立)이라고 표현했다고.

 

서봉으로 올라가는 300여m에 이르는 이 길을 소창룡령(小蒼龍嶺) 혹은 굴령(屈嶺)이라 하는데, 여기가  화산의 하이라이트란다.

 

화산은 산세가 험하고 봉우리가 아름다우며 다양한 약초가 많아서 영생을 찾는 사람들이 모여 도교의 성지가 되었다고 한다.

 

이미 기원전 2세기부터 서봉묘(西峯廟)라는 도교사원이 화산 기슭에 있었으며, 도교도들은 이곳에 염라대왕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산세가 매우 가팔라서 등정을 할 수 없어 도교도를 빼면 황제만이 와서 제사를 드렸다고 한다.

 

취운궁(翠云宮)은 청나라 초기에 세워진 도교사원으로 서봉정전(西峯正殿)이라고도 한다. 안쪽 붉은 편액에는 삼성모전(三聖母殿)이라는 글씨가 보이는데, 삼성모(三聖母)는 보련등(寶蓮燈) 또는 벽산구모(劈山救母) 설화의 주인공이다.

 

부벽석(斧劈石)이 보인다. 서악대제(西岳大帝)의 셋째 딸인 삼성모(三聖母)가 한나라 선비인 류언창(劉彦昌)과 사랑에 빠져, 천계의 보물인 보련등을 갖고 인간세계로 내려와 그와 부부의 연을 맺고 아들 침향(沈香)을 낳았다. 이에 화가 난 삼성모의 오라버니 화산이랑(華山二郎)신이 천상의 규칙을 어겼다고 하여, 삼성모를 서봉 아래 바위밑에 가두고 보련등을 빼앗아갔다.

 

이후 침향이 장성하여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깊은 산으로 들어가 벽력대선(霹靂大仙) 밑에서 수련을 마친 뒤 신부(神斧)라는 도끼로 화산이랑을 물리치고, 보련등을 회수하여 삼성모가 갇혀 있던 바위를 저렇게 도끼로 깨뜨려 모자가 상봉했다는 전설이 있다.

 

서봉 정상으로 향한다.

 

 

정상 오르기 전 인증, 오른쪽 바위는 수신애(守身崖)라는데, 부모의 병을 고치기 위해 절벽에서 뛰어내린 효자에게 신선이 감동을 받았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암봉을 오른다.

 

운해로 중원천지(中原天地)는 오리무중이다. 중원(中原)이란 오악 사이에 있는 땅을 이르는데, 전설에 의하면 화산 300리 이내에 삼황오제(三皇五帝)가 살았으므로 이를 따서 중화(中華)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화산 서봉 연화봉(2,086.6m) 인증

 

주변에는 가침박달나무 꽃이 한창이다.

 

이젠 서봉을 내려가 남봉으로 향한다.

 

연꽃처럼 생긴 서봉

 

짙은 안개가 몰려 온다.

 

여기서 서봉의 하이라이트를 인증해야 한다는데,

 

화산 서봉의 하이라이트 소창룡령

 

계단의 연속이다.

 

화산은 홍콩의 전설적인 무협소설 작가인 김용(金庸)의 '사조삼부곡(射雕三部曲)'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

 

그래서 그가 직접 쓴 '화산논검(華山論劍)'이라는 글자의 표지석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데, 이를 배경으로 관광객들을 검객으로 변신시키고 사진을 찍어주는 상술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저렇게 소창룡령 오르내리는 모습이 화보에 자주 등장하는 화산의 하이라이트라고 한다.

 

 

곳곳에 걸려 있는 붉은 천이 너무 많아서 풍경을 해치는 듯하다.

 

화산의 최고봉 남봉으로 올라간다.

안개가 짙게 끼었다.

 

화산의 정상인 남봉은 비좁은 암봉인데, 남봉은 화산 뿐만 아니라 오악의 최고봉으로 해발고도가 2,154.9m에 달해 화산극정(華山極頂)이라고도 불린다.

 

이 작은 연못을 앙천지(仰天池)라 하는데, 앙천지는 위로는 천택을 이어가고 아래로는 지맥을 받들며 지수는 많아도 넘치지 않고 아무리 가물어도 고갈되지 않는다는데, 화산의 최고봉인 남봉에 있어서 앙천지라 한다고. 기러기들이 남방으로 날아가면서 자주 쉬어 간다고 낙안봉(落雁峰)이라 불린다.

 

남봉 아래 화산논검 인증

 

동봉 쪽은 안개가 짙어서 안 보인다.

 

이제 동봉으로 간다.

 

도교사원을 지나며,

 

동봉이 어렴풋이 보인다.

 

 

거북이는 그냥 지나치고,

 

이젠 동봉이 잘 보인다.

 

동봉 아래는 중봉이다.

 

남천문에 오르면 장공잔도(長空棧道)로 들어갈 수 있는데, 어제 일출보고 새벽부터 줄을 선 사람들이 엄청나다. 장공잔도를 가려고 일찍 서둘렀던 시간들이 허무하게 버려졌다.

 

지금부터 줄을 서서 2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또 장공잔도는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왕복해야 해서 다녀오려면 2시간이 소요되고, 여기서 또 북봉까지 가려면 2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일정상 포기하고 만다.

 

여기가 장공잔도 들어가는 입구이다.

 

장공잔도 구경이나 하고 가기로 하는데, 내려다보니 아찔하다.

 

장공잔도 인증

 

장공잔도(長空棧道)는 남봉으로 올라가는 남천문 외남봉 절벽에 있는 매우 아찔한 구간인데, 수직으로 된 천길 낭떠러지 절벽에 바위를 파서 만든 홈과 널판지로 이루어진 구간이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길인 장공잔도는 1,600m나 되는 높은 바위 절벽에 구멍을 파서 만든 100여m 남짓한 길이다.

 

원나라 때 하원희(賀元希)라는 사람이 수련을 하기 위해 남봉 산허리 절벽에 하조동(賀祖洞)이라는 암자를 만들면서 길을 냈던 곳으로, 암벽에 체인을 설치하고 바닥은 바위를 쪼아 널빤지를 깔아 100m에 이르는 길을 낸 장공잔도는 현재는 관광상품으로 개발되어 30元을 지불하면 안전벨트를 걸고 다녀올 수 있는데, 돈내고 목숨 걸며 위험천만한 이 길을 체험하려는 사람들로 항상 북적인다고.

 

비록 짧은 거리지만 저렇게 수직벽을 왕복해야 해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

 

스릴 만점의 장공잔도

 

이렇게 인증이나 하고 간다.

 

동봉과 하기정을 넣어서,

 

 

동봉 오르는 계단과 하기정을 당겨본다.

하기정(下棋亭)은 송나라 은사(隱士)인 진단이 송의 태조인 조광윤과 바둑을 둔 것을 기념하여 건립한 것으로, 문화대혁명 때 파괴되었으나 1985년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어딜 가나 붉은천과 자물쇠가 걸려 있는데, 붉은 천은 소원성취를, 자물쇠는 영원한 사랑을 위해 거는 것이라고 한다.

 

장공잔도 주변 풍경

 

이젠 동봉으로 간다.

 

 

장공잔도를 포기해서 시간이 남으니 동봉과 남봉 갈림길에 있는 매점에서 컵라면을 먹고 가기로 한다.

 

그동안 일출각으로 간다.

 

동봉에서 일출을 보려면 이곳 대피소에서 추위에 떨면서 밤을 새워야 한단다.

 

춤추는 운해가 장관이다.

 

화산은 약 1억 2천만 년 전에 생긴 하나의 화강암 바위였으나 약 7천만 년 전부터 오랜시간에 걸친 조산운동으로 이런 지형이 만들어졌다고 하니, 자연의 위대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세상만사 모든 위대함은 하루 아침, 아니 짧은 시간에 완성되는 법이 없다.

삐죽삐죽한 산세가 마치 하늘로 솟아오르는 듯하다.

 

일출각에서의 조망

 

라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게도 컵라면 맛은 꿀맛이었다.

 

동봉 오르기 전에 한 컷,

화산논검에서 검무 자세를 하려니 엉거주춤이다. 하루 아침에 나오는 자세가 아니었네!

 

동봉 오르며 남봉을 배경으로,

 

 

가침박달나무와 남봉을 배경으로도 한 컷,

 

춤추는 운해 속으로 들락날락하는 하기정이 신비스럽다.

 

저기도 가고 싶었는데, 사람들이 많아서 물거품이 되었다.

 

동봉으로 들어간다.

 

이쪽으로 가면 요자변신(鷂子變身)이 있단다.

 

하기정(下棋亭)으로 가는 가파른 길을 요자변신(鷂子變身)이라 하는데, 요자변신은 매조차 공중제비를 해야 할 만큼 험난한 길이라는 뜻으로 그만큼 어렵게 내려서야 만날 수 있는 하기정이란다.

 

이곳도 장공잔도와 마찬가지로 돈을 지불하고 안전장치를 하고 들어가야 한다는데, 짙은 안개로 역시나 꽝이다.

 

동봉 오르기 전에 인증

 

 

동봉은 정상석은 없지만 일출을 볼 수 있는 조양대가 있어서 조양봉(朝陽峰, 2,096.2m)이라 불린다.

 

동봉에서 보는 일출이 가장 아름답다는데, 지금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오리무중이다.

 

발 아래로는 천길 낭떠러지다.

 

동봉을 떠나며,

 

동봉 정상부에 있는 양공탑(揚公塔)은 장쉐량(張學良)과 함께 시안사건(西安事件)을 일으킨 중화민국(中華民國) 서북군벌(西北軍閥) 양후청(楊虎城)이 1931년 봄에 노모를 모시고 화산에 오른 것을 기념해 세웠다고 하는데, 서봉에도 이런 탑이 있다.

 

안개가 몰려온다.

 

 

이곳은 만상삼라(萬象森羅)라는데 안개가 심술이다.

 

로프에 의지해 목숨 걸고 사진을 찍는데, 화산에서 운영하는 한 숙소에서 돈을 받고 찍어주는 것이라고, 짙은 안개로 뭐가 보여야 할 일이지.

 

이젠 중봉으로 내려간다.

 

구름속으로 오른다는 계단인 운제(雲梯)를 오르는 사람들

 

우린 역방향이라 옆에서 인증이나 하고 간다.

 

운제(雲梯)는 1984년 만들어진 험로(險路)로 인봉정(引鳳亭)에서 양공탑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중봉으로 간다.

 

저기가 중봉이다.

 

중봉에 오니 한 여성이 잘 되지도 않는 온갖 포즈를 지도받으며 인증하느라 시간이 지체된다.

 

오랜 기다림 끝에, 중봉은 화산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서 중봉이라 부르는데, 시냇물이 굽이굽이 흐르고 나무 그늘이 하늘을 가리웠으며, 기이한 화초들도 많고 환경이 조용하단다.

 

전설에 의하면 춘추시대 진목공 딸 농옥은 생황(笙篁)을 잘 불었다는데, 그녀는 자신과 합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혼인하지 않겠다고 했다. 어느날 퉁소를 잘 부르는 정랑 소사를 만났는데, 소사가 농옥에게 퉁소를 가르쳐 퉁소를 잘 불게 되자, 그 소리가 아름다워 봉황이 날아들었다.

 

농옥과 소사는 봉황을 타고 화산으로 올라가 신선이 되었다고 하여 중봉을 옥녀봉이라 하는데, 봉 위의 경관으로는 옥녀세두분, 옥녀석마, 인봉정, 무근수 등이 있으며, 모두 퉁소로 봉황을 부른 이야기인 취소인봉(吹簫引鳳)의 설화란다. 그래서 옥녀봉 주변에는 사랑의 자물쇠가 유난히 많다고 한다.

 

여기도 가침박달나무가 빙 둘러섰다.

 

싱싱한 박쥐나물이 탐스럽다.

 

이젠 마지막 봉우리 북봉으로 향한다.

 

금쇄관(金鎖關)을 지나며, 금쇄관은 당나라 시대부터 지어지기 시작하여 몇 차례 증축을 거쳐 1985년 지금의 모습으로 완공되었는데, 사랑의 증표가 무수히 많다.(화산 2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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