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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소림문화 인류유산(少林文化 人類遺産) 소림사(少林寺) 탐방

by 새인1 2024.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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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5월 4일 오전 일정으로 방문한 소림사(少林寺)는 중국 제일의 선종 사찰이자 소림파 무술의 발원지로 정주와 개봉 사이에 있는 등봉시(等封市) 중악 숭산(中岳嵩山)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소실산(少室山) 아래의 무성한 숲 속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소림사라 한다. 흔히 소림사는 달마대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 사실은 약 1,500년 전 북위 태화 19년(495년) 효문제 때 인도에서 온 발타선사가 창건했다. 전설에 따르면 발타선사는 6명의 친구와 함께 출가했는데, 친구들은 모두 성불하고 발타만 부처가 되지 못하였다. 그래도 낙망하지 않고 구도의 길을 떠난 발타는 마지막으로 중국에 이르러 효문제를 만나게 되고, 효문제의 명으로 소림사를 세웠으며, 그는 30년간 소림사에서 머물다가 떠났다고 한다. 소림사는 현재 중국 선종 불교의 본산이자 소림 무술의 발상지로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아침 일찍 소림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차량들이 와 있었다.

 

 

소림무술의 발상지라 곳곳에 무술인들의 동상이 보인다.

 

입구 비석에서 인증하느라 야단법석이다.

 

소림문화 인류유산(少林文化 人類遺産)이란 글씨는 장쩌민 주석이 2004년 7월에 쓴 글씨란다.

 

여기저기서 무술시범 보이느라 시끌벅적하다.

 

소림사가 소재한 등펑시(等封市)에는 소림사를 포함해 76개의 무술학교가 있으며, 6만여 명의 수련생들이 무술을 연마하고 있는데, 그들 중에 선발된 자들만이 이곳 소림사 경내의 무술원에서 수련받는다고 한다.

 

소림사(少林寺)는 중국 선종 불교의 본산이자 소림 무술의 발상지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정작 소림사가 유명해 진 것은 중국의 국민배우 이연걸이 주연한 '소림사'라는 영화가 히트친 후 소림사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숭악사탑 모형이 보이는데, 소림사의 12각 15층의 숭악사탑(嵩岳寺塔)은 '화하제일탑(華夏第一塔)'이라고도 불리며, 북위(北魏) 효명제 정광연간(520년)에 지어진 것으로 탑의 높이는 40m이며 모두 15층이고, 중국에서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벽돌 불탑이라는데 실물 영접을 하지 못해 아쉬웠다.

 

입구 통과는 수월했다.

 

도인이 지나간다.

 

중국 무술은 천하를 놀라게 하고(中國功夫驚天下), 천하의 무술은 모두 소림에서 나온다(天下功夫出少林)고 한다.

 

먼저 소림무술을 관람하러 들어간다.

 

천하제일명찰(天下第一名刹)이라는데, 너무 시끌벅적하여 사찰이 아니라 도떼기시장 같다.

 

아까 지나가던 도인이 흔쾌하게 모델에 응해준다.

 

소림사는 527년 인도에서 온 달마대사가 주지로 정착해 선종을 적극 전파하면서 '중국 선종의 본산'이 되었는데, 달마대사는 부리부리한 눈과 다소 험상궂은 표정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인물이다. 그는 이곳에서 9년간의 면벽수행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고 불교의 큰 스승이 되었는데, 흥미로운 점은 그가 소림 무술 '쿵푸'의 창시자라는 것이다. 온종일 면벽수행을 하는 승려들의 건강이 염려되어서 동물들의 5가지 대표적인 동작을 본떠 만든 운동 동작이 소림무술의 시초다. 수나라 때 이르러 불교가 전국적으로 성행하면서 소림사는 북방 최대의 선종 사원이 되었다.

 

소림무술이 명성을 날리게 된 것은 당나라 때로, 당나라를 건설할 때 당 태종 이세민이 활거 세력들과의 다툼에서 무술을 연마한 소림사 승려들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이에 이세민은 당태종으로 즉위하자 소림사 승려들에 한해서 살계를 풀고 육식과 음주를 허가했다. 뿐만 아니라 승병을 전문적으로 훈련시키고 자체적으로 병영을 설치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해서 소림 무술이 부흥기를 맞이했는데, 이 시기에 무술을 연마하고자 모여든 승려가 2,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렇게 소림 무술은 송나라 때 체계를 완벽하게 갖추면서 '소림파'로 불렸는데, 문화대혁명 때 소림 무술은 전폐 위기를 겪었고 1999년에는 승려가 4명이 불과했다. 빛바랜 역사 속으로 아스라이 사라져 가던 소림사에 심폐소생술을 성공적으로 해낸 이는 해외에서 MBA 경영학을 공부하고 온 현재의 스융신(釋永信)방장이란다. 중국에서 출가한 사람은 모두 석가모니의 성인 '석(釋)'씨가 된다고 한다.

 

그는 1965년 안후이(安徽)성에서 태어나 1987년 소림사 역사상 22세라는 나이에 최연소 방장이 됐는데, 지금은 여러 추문도 많이 따라 다닌다는데도 권력의 비호 아래 끄떡 없다고 한다. 그는 '쿵푸(功夫)의 발상지'를 키워드로 내세워 해외 비즈니스에 적극 나섰고, 세계 쿵푸 토너먼트 대회를 개최하고 할리우드와 공동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등 홍보에 만전을 기했다. 지금은 300여 명의 승려가 예불을 드리는 불교사원이자 무술 연마를 꿈꾸는 수련생들이 대거 모여들어서 새로운 중흥을 맞이했다.

 

2010년에는 '천지의 중심(天地之中)'이라는 테마로 소림사, 숭양서원, 중악묘가 공동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는데, 일각에서는 사원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았다는 비판이 거세다고. 참선하는 선종 불교의 고유한 정신을 망각하고 상업화에 짙게 물든 게 사실이지만, 그러나 긍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면 스토리텔링의 대성공이라 할 수도 있다.

 

좋은 자리 차지하려면 일찍 들어가야 한다는데, 저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었으니 이미 좋은 자리 선점은 틀렸다.

 

2층 좌석은 기둥 때문에 잘 보이지 않고 1층은 만석이라 할 수 없이 뒷자리에 서서 관람을 하였다.

 

공연에 앞서 이 지방의 유명 서법가인 이동번(李東藩) 선생 현장 휘호 시연을 보여준다.

 

이렇게 현장판매도 하고 있다.

 

천도수근(天道酬勤)

 

유명 서법가 휘호 시연 장면

 

현란한 무술 공연은 약 40분간 이어진다.

 

소림무술 공연 장면

 

 

 

 

 

 

 

무술쇼가 끝나면 일반인 3명을 불러내서 무술 수련생 따라하기 시범쇼를 보여주는데, 엉거주춤 따라하는 모습에서 폭소를 자아낸다.

 

일반인 무술시연 장면

 

공연이 끝나고 나오니 광장에서 무술인들이 돈을 받고 사진촬영에 응해 준다.

 

이젠 소림사로 들어간다. 소림사는 북위 효문제가 인도 승려 발타대사를 위해 지었으며, 지금까지의 역사만 해도 1,500년으로 후에 선종의 시조가 됨과 동시에 소림사는 중국 선종의 조정이 되었다. 산문, 종루, 고루를 비롯해서 사원 내부에는 장경각(藏經閣), 대웅보전(大雄寶殿), 천불전(千佛殿), 면벽영석(面壁影石) 등이 있다.

 

건물은 소실된 후 재건되었지만 양 옆의 돌사자상만이 소림사의 역사를 말해준단다.

 

소림사(少林寺) 입구에는 엄청난 인파가 줄을 서서 들어가고 있는데, 연간 방문객이 150만 명에 달한다. 현판 글씨 중 소림(少林)은 청나라 황제 강희제가 쓴 것이고, 사(寺)는 후대의 불교협회장이 쓴 것이라 한다.

 

산문을 들어서니 양쪽으로는 수령이 1,500년 되었다는 은행나무가 도열하고 반긴다.

 

소림무승들이 쌀을 씻으면서 연마한 이지선(二指禪: 쌀을 두 손가락으로 찌르면서 연마한 무공)을 하면서 손가락으로 나무에 구멍을 뚫은 것이라 한다.

 

1,500년 세월에 은행나무 수피도 소나무처럼 변했다.

 

엄청난 인파에 밀려다니면서 관람해야 했다.

천왕문 현판의 '천하제일조정(天下第一朝廷)'은 청나라 황제 강희제가 직접 쓴 글씨라고 하는데,

 

중앙에는 황제의 직인도 찍혀 있다고.

 

양 옆으로는 많은 비문들이 서 있는데, 이세민을 반란군으로부터 구출해낸 13명의 소림무승 이야기에서부터 청대 건륭제가 소림사를 찾았을 때, 마침 가뭄이 든 이 지역에 비가 와 그 기쁨에 썼다는 비문까지 역대 왕조에 따라 부침을 거듭했던 소림사의 역사를 잘 보여준단다.

 

종루 앞에는 당태종 이세민의 어서비(御書碑)가 세워져 있다.

 

비문의 내용은 수나라 말기 민란이 발발해 치열한 공방전 때 위험에 처한 이세민을 도운 소림사 승려들의 공로를 예찬한 비문이라는데, 당나라 현종의 필체로 728년에 세웠다고 한다.

 

오른편 중앙에는 세민(世民)이라는 당태종의 친필 싸인도 새겨져 있다.

 

 

대웅보전에서, 불교 사원의 중심 건축물인 대웅보전은 1928년 소실되어서 1986년에 남은 잔재와 기록에 의해 재건하여 고졸한 맛은 없다.

 

대웅보전에는 약사불, 석가모니불, 아미타부처님을 모시고 양 옆으로는 두 제자인 아난과 가섭이란다.

 

숭산 자락에는 있는 소림사는 김용의 무협소설과 홍콩 무협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졌고, 흔히 소림사는 '쿵푸의 본산'으로 알려져 있지만, 불교사에서는 그보다도 대승불교의 큰 줄기인 선종(禪宗)의 고향으로 인정받고 있다.

 

석가의 열반상과 불경을 보관하는 장경각(藏經閣)은 1928년 방화로 소실되었는데, 소실된 불경이 많다는 것을 후세 사람들에게 일깨워주기 위해 장(藏)의 왼쪽 획을 일부러 쓰지 않았다고 한다.

 

장경각 내부에 열반에 드시는 부처님이 엄청 미인이시다.

 

 

방장실 문은 굳게 닫혀 있고 뒤에는 입설정(立雪亭)이라는 전각이 있는데, 입설정 안에는 '단비구법 입설인(斷臂求法 立雪人)'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단다. 이는 9년간 면벽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달마대사에게 구름 같은 제자들이 몰려들어 가르침을 구했다는데, 달마는 아무도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눈이 오는 겨울날 혜가는 입설정 앞에서 눈이 무릎에 차오를 때까지 움직이지도 않고 배움을 구했다. 그러나 달마는 '하늘에서 붉은 눈이 내리지 않는 한 내가 너를 제자로 삼는 일은 없을 것이다.'하고 떠나려 하자, 혜가는 자신의 오른팔을 잘라 피로 주변의 눈을 붉게 물들이고는 '지금 하늘에서 붉은 눈이 내려 주변이 온통 다 붉어졌습니다.'하고 대답했다. 혜가의 용기와 지혜에 탄복한 달마는 그를 제자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혜가는 소림사의 2대 방장이 되었다. 이후 소림사 승려들은 왼쪽팔을 잃은 혜가스님을 기리기 위해 합장을 할 때 오른쪽 한 손으로만 합장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역대 고승들의 불상이라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관람을 포기한다.

 

서방성인(西方聖人)은 달마대사를 말한다. 달마대사가 소림사를 떠나서 구름 따라 떠돌다가 열반했고 장례까지 치렀는데, 달마의 사망 소식을 모른 동위(東魏)의 사신 송운이 서역을 다녀오는 길에 달마와 만났는데, 지팡이를 짚고 신발 한짝만 들고 맨발인 채로 서천으로 간다고 했단다. 달마는 만난 사실을 밝히면 곤란해진다 했지만, 송운은 달마를 만났다고 황제에게 털어놓았는데 거짓말을 한다고 벌을 받는 중 황제가 무덤을 확인하라 했고, 그 결과 시체는 사라지고 신발 한짝만 남았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에 송운은 누명을 벗었는데, 세상에서는 달마가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인 서방정토로 갔다며 달마를 칭송했다는 이야기다.

 

소림사 천불전에는 검은 얼굴의 석가모니 부처님이 앉아 계시고, 3면의 벽면에는 십삼곤승구당왕도(十三棍僧救唐王圖)와 오백나한조비로도(五百羅漢助毗盧圖)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지반이 내려 앉은 이유는 청대 이후 소림무술승들이 반란을 일으킬 것을 경계하여 많은 핍박이 있었는데, 그래도 스님들이 밤에 몰래 무술연습 하느라 바닥이 내려앉은 것이라 한다.

 

달마대사상

 

저 전각의 지붕은 실제로 유리보석이란다.

 

이렇게 유명세를 떨치는 소림사라는 이름은 현재 브랜드로 등록되어 있는데,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소림사가 등장하려면 저작권료를 내거나, 다른 이름으로 개명해서 내야 한다고.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탑림(塔林)은 고승들의 사리탑이 한자리에 모여서 숲을 이뤘다 하여 탑림이라 하는데, 791년에 세운 법완선사탑(法玩禪師塔)이 가장 오래되었고, 2002년에 세운 최근 것까지 합쳐 총 248개의 탑이 들어서 있다.

 

비교적 최근에 세워진 불탑이라는데,

 

자동차와 카메라도 새겨져 있다.

 

무술에 능통했던 방장스님이었다고 한다.

 

얼굴도 보인다.

 

시대별로 다양한 형태로 세운 탑은 고승의 수행 정도와 따르는 제자 수에 따라서 높이와 크기가 달라졌다고 하는데, 황제가 머물던 태화전의 전각 높이가 15m여서 어떤 탑도 15m를 넘을 수는 없었다고 한다.

 

가장 특이한 탑은 유공탑(裕公塔)이라는데, 탑림 중에서 유일하게 1m 높이의 담장이 둘러져 있으며, 원나라 때 소림사 주지를 지낸 복유(福裕, 1203~1275)의 사리를 모신 탑으로 '성을 함락하면 투항한 백성 모두를 살해하던 악습'을 고쳐 존경받던 인물이다.

 

소림사 관람을 모두 마치고 숭산 트레킹 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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