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에 이어서)
신선암봉에서 3.6km 떨어진 깃대봉으로 향한다.
가야할 928봉과 부봉
긴 계단 내려선다.
뾰족한 928봉이 위압감을 선사한다.
깃대봉 뒤로 신선봉-마패봉과 멀리 중앙의 월악산 라인
당겨 본 월악산 영봉과 만수라인
당겨 본 연어봉과 신선봉
멋진 산군들이다.
부봉에서 주흘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도 멋지다.
신선암봉 내려서면서 바라본 조망
이 시기에는 미역줄나무가 대세다.
계속 아래로 떨어지는 계단길
이곳에서 꾸구리바위 쪽으로 탈출이 가능한데 길이 좀 험하다고, 깃대봉으로 직진한다.
이젠 긴 계단 올라가야 한다.
뒤돌아 본 신선암봉
조령산에서 신선암봉-깃대봉 방향은 그야말로 계단지옥이다.
신선암봉을 내려 온 가파른 계단이 보인다.
이젠 암릉길이 시작된다.
가야 할 928봉
가야 할 깃대봉 뒤로는 신선봉 - 마패봉 라인
계단이 또 보이고,
이런 계단은 애교 수준이다.
뒤돌아보고,
멀리 속리산 라인
지나 온 조령산
지나 온 신선암봉
멋진 소나무들
이젠 암릉길을 1.2km나 가야 한다.
멀리 군자산
괴산의 산군들
928봉과 부봉, 주흘산 영봉
당겨 본 부봉
암릉 하나 넘어서고,
가야 할 928봉
최대 난코스를 마주한다.
간신히 내려서고,
또 다시 맞닥뜨리는 직벽구간
방금 지나 온 직벽구간을 내려다보니 후덜덜하다.
주흘산을 바라보고,
928봉 인증
어렵게 내려서면,
또 다시 마주하는 암릉구간
암릉을 돌아 올라서면,
로프구간이 기다린다.
미역줄나무 버젼으로 담아본 문경새재 방향
암릉 사이로 내려서고,
가야 할 깃대봉의 치마바위가 멋스럽다. 그 뒤로는 연어봉-할미봉-신선봉-마패봉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밧줄구간
암봉을 넘어서고,
거대한 바위 옆으로,
올라서고,
소나무를 지탱하여 올라선다.
또 다시 내려서고,
멋진 부봉 6봉 뒤로 포암산
지나 온 928봉을 배경으로 담고,
꼬리진달래가 끝물이지만 싱싱한 꼬리진달래를 만나고,
유격훈련이 계속된다.
저 암릉이 또 고비다.
우선 비좁은 석문을 인증하고,
직벽을 올려친다.
올라서니 돌양지가 소담스럽게 반긴다.
이제는 긴 계단을 마주하고 암릉구간이 끝난다.
멀리 월악 능선을 바라보고,
당겨 본 월악 하봉, 중봉, 영봉과 만수릿지
긴 계단 내려서고,
제2관문은 1.8km이고, 제3관문은 2.2km이니, 힘들면 제2관문쪽으로 탈출하면 되는데 제3관문 방향의 깃대봉으로 향한다.
이젠 등로가 부드러워진다.
부봉과 주흘산
월악산과 만수릿지, 중앙의 만수봉, 오른쪽의 포암산으로 이어지는 암릉이 헌걸차다.
가까이 다가서는 깃대봉
부드러운 능선길로,
마당바위를 지나고,
마지막 계단을 힘겹게 올라선다.
지나 온 능선이 멋지다.
부봉과 주흘산
삼각점은 여기 능선상에 있다.
깃대봉이 10분 거리라니 발걸음도 가볍게 올라간다.
지나 온 능선이 훤히 보인다.
깃대봉에 올라서니 뒤로 신선봉 - 마패봉 라인이 한층 가까워졌다.
깃대봉(835m) 인증, 치마바위봉이라고도 한다.
다시 삼거리로 돌아와서 제3관문 방향으로 간다.
긴 계단을 내려서고,
이젠 약간 오름짓도 힘들다.
이곳에는 1708년(숙종 34년)에 길이 6척, 너비 4척, 두께 2척 되는 돌로 둘레 18,509보의 산성을 쌓았는데 현재는 200m 가량 남아 있단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깃대봉이 뾰족하게 솟구쳤다.
제3관문으로 내려왔다.
조령약수
제3관문을 뒤돌아보고,
주차장까지는 아직도 7km나 가야 한다.
문경새재 길따라 내려간다. 문경새재는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 상의 가장 좁고 험한 고개로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鳥嶺]', '억새들이 우거진 고개[草岾]', '하늘재와 이화령 사이(새)의 고개', '새[新]로 만든 고개' 등의 뜻이 담겨 있다.
낙동강 발원지도 찾아보고,
동화원터를 지나고,
이진터(二陣址)를 지나고, 이진터는 임진왜란 당시 왜장 고니시 유끼나가가 18,500명의 왜군을 이끌고 문경새재를 넘고자 진안리에서 진을 치고 정탐할 때, 선조의 명을 받은 신립장군이 농민 모병군 8,000명을 이끌고 대치하고자 제1진을 제1관문 부근에 배치하고 제2진의 본부를 이곳에 설치하였으나, 신립장군은 이곳 새재에서 왜적을 막자는 부하 장수들의 극간을 무시하고 허수아비를 세워 초병으로 위장 후 충주 달천강변으로 이동하여 배수진을 쳤으나, 왜군 초병이 조선 초병 머리위에 까마귀가 앉았다 울고 가는 것을 보고 왜군이 새재를 넘었다고 하는 아픔이 담긴 장소이다.
계곡물도 힘차게 흐른다.
한국식 통나무집인 귀틀집
문경 새재 아리랑비
영남제2관문인 조곡관(鳥谷關)은 문경새재 3개의 관문 중 가장 먼저인 1594년(선조 27년)에 세워진 문이고, 제1, 3관문은 1708년(숙종 34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인공폭포인 조령폭포
수로에 물이 힘차게 흐른다.
산불됴심비의 세워진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조선 후기로 추정하며, 국내 유일의 순수 한글비석이라 한다.
그 옛날 문경새재를 지나는 길손들이 이 길을 지나면서 한 개의 돌이라도 쌓고 간 선비는 장원급제하고, 몸이 마른 사람은 쾌차하고 상인은 장사가 잘 되며, 아들 못 낳은 여인은 옥동자를 낳을 수 있었다는 소원성취탑이란다.
저 쪼맨 바위가 꾸구리바위라는데, 바위 밑에는 송아지를 잡아먹을 정도로 큰 꾸구리가 살고 있어서 바위에 앉아 있으면 물속의 꾸구리가 움직여 바위가 움직였으며, 특히나 아가씨나 젊은 새댁이 지나가면 희롱하였다고 한다.
교귀정(交龜亭)은 조선시대 임금으로부터 명을 받은 신·구 경상감사가 업무를 인계인수하던 곳이란다.
교귀정은 용송이 지켜준다.
용추(龍湫) 각자를 찾아보라는데, 하산시간이 촉박해서 찾지 못하였다.
용추 인증
조령원터를 지나며,
조령원터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공용으로 출장하던 관리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곳이다.
지름틀 바우는 뱀대가리 같다.
조산(造山)은 풍수지리적으로 공허하거나 취약한 지점에 조산을 만들어서 보강하고자 하는 의식이 담겨 있다.
저 10m 암벽 위에 새겨져 있는 비문은 상주목사(尙州牧使) 이익저(李益著)의 불망비(不忘碑)라 한다.
저 위쪽 암벽에는 현감(縣監) 구명규(具命奎)의 선정비(善政碑)가 새겨져 있다.
현감과 관찰사들의 선정비가 나열되어 있는 공덕비군을 지나며,
영남제일관 주흘관(主屹關)을 나선다.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들
옛길박물관을 포근히 둘러싸고 있는 주흘산
새재 선비상
문경새재 도립공원 주차장에 도착하여, 이화령 - 조령산 - 신선암봉 - 깃대봉 - 제3관문 - 제2관문 - 제1관문 - 주차장까지 16.8km에 6시간 50분 걸린 힘들었지만 멋진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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