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에 이어서)

모악산 인증 후,

건물 옥상으로 조망 보러 올라간다.

사방으로 한바퀴 돌아본다.

멀리 연석산, 운장산, 구봉산이 선명하고,

그 옆으로 덕유산도 아스라하다.

덕유산 옆으로는 성수산, 덕태산, 선각산, 장안산이 포진하고,

멀리 지리산 라인도 눈에 들어온다.

백련산, 회문산과 그 사이로는 곡성의 동악산과 순천의 조계산

당겨 본 백련산

왼쪽의 당겨 본 조계산과 오른쪽으로 깃대봉과 회문산 사이로 화순 모후산이 흐릿하게 보인다.

좀 더 당겨 본 화순 모후산

회문산, 여분산, 세자봉 뒤로 희미한 무등산

여분산과 세자봉 뒤로 웅장하게 보이는 무등산

멀리 지리산 라인이 선명해졌다.

드디어 왼편에 지리산 천왕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멀리 담양 추월산과 병풍산, 정읍 내장산과 백암산, 입암산

당겨 본 담양 추월산과 병풍산

그 옆으로는 정읍의 내장산, 백암산, 입암산과 고창 방장산이 꿈틀거린다.

두승산 뒤로는 고창 선운산과 오른쪽으로 내변산이 흐릿하다.

당겨 본 두승산과 뒤로 선운산

당겨 본 변산 관음봉에서 의상봉까지

너른 김제평야가 풍요롭고, 멀리는 서천, 보령의 고만고만한 산들이 포진했다.

멀리는 오서산, 칠갑산 방향

멀리 중앙에 익산 미륵산과 용화산, 그 옆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계룡산

당겨 본 익산 미륵산과 용화산

당겨 본 계룡산

전주시가지 너머로 보이는 계룡산과 대둔산

당겨 본 바랑산, 월성봉, 대둔산, 천등산

대둔산 옆으로 써레봉, 선녀남봉, 선녀봉, 선야봉, 태평봉수대, 성봉, 명덕봉, 연석산, 운장산, 구봉산까지

당겨보니 선야봉 능선 뒤로 서대산이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전주시가지

발 아래로는 금산사가 아늑하게 보이고,

당겨 본 금산사

덕유라인도 다시 찾아보고,

북봉 방향으로 내려간다.

등로가 평탄하여 걷기에는 좋다.

금산사 갈림길을 지나고,

북봉에 도착한다.

쑥부쟁이가 점령한 북봉 정상 헬기장

모악산 북봉(729m) 인증

매봉 방향으로 간다.

매봉 방향은 거의 오르내림이 적어 편안하게 간다.

나무들이 우거져 조망도 없다.

멋진 소나무 아래 쉬어간다.


거의 기복이 없는 평지 수준이라 룰루랄라다.


삼거리에 도착하여 매봉으로 올라간다.

모악산 매봉(622m) 인증

금산사 방향으로 하산길 매봉 아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무등산, 추월산 방향

내장산, 입암산, 방장산

변산도 바라보고,

쭉쭉 고도를 낮춘다.

우거진 조릿대


나뭇가지 사이로 간신히 당겨 본 모악산 정상


정자에 도착하여 금산사 방향 순례길로 간다. 직진하면 바로 주차장으로 떨어진다.

부드러운 순례길 따라서,

편백나무 숲길 따라서,



심한 가을 가뭄에 계곡물이 말랐다.

명상 쉼터를 지나고,

등로가 임도길 수준으로 넓어졌다.


순례길을 벗어나 임도 따라서 금산사로 간다.

승탑을 지나고, 이곳에 보물 제24호인 혜덕왕사 진흥탑비가 차광막 안에 있는데 멀리서 보고 지나쳤다.

금산사는 백제 법왕 원년(599년)에 창건되었고 통일신라 때 진표율사가 낡은 사찰을 대규모로 고쳐 지은 이후, 만물의 궁극적 실제는 마음이며 모든 것은 마음이 제각기 다르게 나타난 것 뿐이라는 유식사상을 펼친 유가종찰과 미륵신앙의 성지로 명성을 구축하였다. 또한 후백제의 견훤이 아들과의 불화로 금산사에 유폐되었었고, 고려 문종 33년(1079년) 혜덕왕사 소현이 다시 한 번 대규모로 중창한 다음부터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 후 현재까지 여러 차례 중건과 중수로 대대적인 도량 정비를 거쳐 호남 제일의 가람으로 웅장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국보 1점과 보물 10점, 국가등록문화유산 1점, 시도유형문화유산 1점을 소유하고 있으며, 역사와 문화, 사상적 측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첫번 째로 만나는 당간지주는 보물 제28호였는데, 현재는 국보와 보물의 호수는 없어졌다. 당간지주는 사찰에서 신성한 영역을 나타내는 깃발을 걸 때 주로 사용하며, 금산사 유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8세기 후반 경에 제작되었다고 한다.

보제루를 통해 들어간다.

대적광전(大寂光殿)은 정유재란 후 수문대사가 금산사를 복원 중창할 때 지은 정면 7칸, 측면 4칸 건물로서 보물 476호로 지정되어 있었지만, 1986년 화재로 소실되어 문화재 지정이 취소되었으며, 현재 이 법당은 1990년에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한 것이다.

보물 제22호인 노주(露柱)는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 불명확하나 돌로 조성한 좌대 위에 보주 형태의 돌기둥이 놓여 있어 노주라 한다. 미륵전 앞에서 미륵부처님을 광명으로 공양했던 광명대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보물 제23호인 석련대(石蓮臺)는 불상을 올려놓는 연꽃 모양의 받침대이며, 통일 신라시대의 화려한 양식을 띠고 있어서 통일신라와 고려 초기 사이에 제작된 좌대로 추정하며, 마치 여러 개의 돌로 구성된 듯 보이지만 하나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규모나 조성미로 미루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대적광전 앞에 있는 보물 제27호인 육각 다층석탑은 통일 신라시대 일반적인 모양에서 장식이 화려한 고려시대의 양식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세워졌는데, 대다수의 탑이 화강암인데 반해 벼루를 만드는 점판암으로 제작된 것이 특징이며, 각 층마다 체감비례가 적절하고 조각이 섬세하며 뛰어난 조형미를 갖추고 있다.

보물 제827호인 대장전(大藏殿)은 대장경을 보관하려고 만든 목탑 양식의 전각으로, 정유재란 때 불 타 없어졌으나 인조 13년(1635년)에 미륵전 앞에 세워졌고, 1922년 현 위치로 옮겨 놓았다.

지붕 위에는 오층석탑에서 볼 수 있는 복발과 보주가 장식되어 있으며, 본래는 금산사에서 간행된 불교 경판과 경전 등을 내부에 보관하였지만, 경전 등이 유실되자 석가모니불과 제자인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상이 봉안되었다. 부처님 뒷면에 조성된 광배가 아주 정교하고 아름답다.

대장전 앞에 있는 보물 제828호 석등은 부처님과 조사 스님께 등불을 공양하기 위해 금당이나 부도전 앞에 세워지는데, 조각수법이나 지붕돌에 새겨진 꽃 조각 양식에서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제 대적광전 옆으로 올라 보물 2점을 만난다.

우선 절마당을 내려다보고,

웅장한 국보 미륵전도 내려다보고,

보물 제25호인 오층석탑은 고려 경종 4년(979)부터 성종 원년(982년)에 세워졌으며, 본래 9층이었으나 현재는 5층으로 남아 있다. 탑의 맨 위층 네모난 지붕 모양의 노반이 크고 넓으며, 석탑의 상륜부는 대장전 용마루 한가운데에도 설치되어 있다.

보물 제26호 방등계단(方等戒壇)은 통일신라 경덕왕 21년(762년)에 진표율사가 최초로 설치하였고, 고려 혜덕왕사 소현이 중수하였다. 단 가운데 종모양의 탑이 있는데, 상부에 9룡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출가자와 재가자의 수계의식이 행해졌으며, 미륵 십선계를 주었다.

기단의 각 면에는 고려시대의 수려한 기법이 잘 표현되어 있는 불상과 신장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사방에는 사천왕등 호법신장이 에워싼 사리탑 형식의 계단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완벽한 형태를 갖춘 희귀하고 중요한 성보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단다.

그 옆에 있는 적멸보궁(寂滅寶宮)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에 직접 예불을 드리기 위해 지은 전각으로, 부처님의 분신과 다름없는 사리를 모시기 때문에 전각 안에 불상이나 불화 등은 모시지 않으며, 전(殿)이나 각(閣)보다 더 높은 의미에서 궁(宮)이라 한다. 전각 뒤편에는 방등계단이 있고, 그 중앙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종 모양의 탑이 있다.

드디어 국보 제62호인 금산사 미륵전을 알현한다. 미륵전은 1층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 미륵전(彌勒殿) 등의 각기 다른 편액이 걸려 있으며 모두 미륵 세계를 뜻한다.

진표율사가 금산사에 미륵을 건립한 이후 속리산 법주사(法住寺)와 금강산 발연사(鉢淵寺)에도 미륵을 세웠는데, 그가 이렇게 미륵을 세 곳에 모신 이유는, 미륵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지상에 하생(下生)하여 3회의 설법을 한다는 미륵하생신앙(彌勒下生信仰) 때문이라 한다. 이 세 차례에 걸친 설법 모임을 ‘용화삼회(龍華三會)’라고 부르고, 미륵을 따라 그 설법에 참여하고자 발원(發願)하는 것이 바로 미륵하생신앙이다.

이 미륵불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1627년 미륵전을 중건할 때 다시 만들어졌는데, 이때 미륵불은 흙으로 빚어 만든 소조상(塑造像)에 도금을 한 것이며 ‘山’ 글자 형태의 삼존불로 봉안되었다. 금산사 미륵전은 겉으로는 3층이지만 내부는 위아래가 모두 통하는 1개의 통층(通層)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미륵이 하생(下生)하여 3회의 설법을 하는 용화삼회(龍華三會)의 설법장이 곧 금산사 미륵전임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미륵전 2층에 걸린 현판이 용화지회(龍華之會)인 것도 이를 나타내는 것이라 한다. 미륵전 내부는 전체가 하나로 터진 통층이며, 위압적일 만큼 웅장한 높이 11.8m의 거대한 미륵장육존이 주불로 모셔져 있다. 미륵불 좌우의 협시보살인 법화림보살, 대묘상보살도 높이가 8.79미터에 이를 정도로 거대하다.

현재 금산사에 있는 미륵금불은 1934년 원인 모를 화재로 불에 타서(미륵전과 옆의 두 불상은 타지 않았음) 1938년 당시의 조각가 김복진에 의해 다시 조성되어 새로 모셔진 것이다. 그 후 양 옆으로 두 구의 보살상이 추가로 봉안되어 전체적으로 '出' 글자 형태가 되었다. 미륵보살은 석가모니 부처에 이어 다음 세상을 구원할 붓다로, 현재는 보살이지만 이미 부처로 내정된 상태다. 하지만 미륵불은 56억 7천만 년 후에 온다고 하는데, '미륵'에는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이 온다는 믿음이 서려있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데 성보박물관 앞에 멋진 분재 소나무가 눈길을 끈다.

금강문을 나서니,

태공당 월주 대종사의 부도탑이 보인다. 월주 대종사는 금산사 주지로서 조계종 총무원장을 두 차례 역임하며 한국불교의 기틀을 다졌고, 퇴임 후에는 지구촌 공생회를 설립해 나눔과 자비를 몸소 실천했던 큰 스님이다.

꽃무릇은 이미 시들고 있었다.

금산사에서 1.3km 떨어진 주차장으로 간다.

웅장한 일주문을 나서며, 멀리 모악산 정상이 보인다.

용화종찰 미륵성지 금산사

월주 대종사의 친필로 쓰인 개화문을 나서며, 이곳은 금산사를 지키는 석성이 있던 옛 성문 자리로 견훤이 후백제를 세운 뒤 금산사를 근거지로 삼았던 역사와 관련해서 견훤성문이라고도 한다.

인공폭포에서 시원한 물줄기가 흘러내린다.

그 앞을 고양이들이 지나간다.

오늘도 참 잘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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