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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황량한 광야의 축복 요르단(Jordan) 제라쉬 유적(Jerash Ruins)

by 새인1 2026.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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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동의 폼페이'라고 불릴 만큼 도시의 구조와 건축물이 거의 온전하게 남아 있어, 고대 로마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제라쉬 유적지(Jerash Ruins)는 요르단 암만에서 북쪽으로 약 40~50km 거리에 있으며, 해발 약 600~1,250m에 위치하는 고대 로마의 유적이다. 제라쉬의 고대 이름은 게라사(Gerasa)로 기원전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후로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이후 로마제국 시대에 전성기를 맞으며, 데카폴리스(Decapolis)라 불린 10개의 로마 도시 연맹 중 하나로 번영을 누렸다. 서기 1~3세기가 전성기였으며, 상업, 종교, 행정, 문화가 모두 발달한 계획도시였다. 이후 비잔틴 시대와 이슬람 시대를 거치며 점차 쇠퇴하다 서기 749년 대지진 이후 도시 기능을 상실했다. 이후 제라쉬는 1806년 재발견될 때까지 수세기 동안 잊혀져 있었으며, 1925년부터 발굴이 시작되어 현재도 진행 중이며, 전체 유적의 약 20~25% 정도가 발굴되었다. ◆

 

 

야자나무가 반기는 제라쉬 유적지로 들어간다.

 

멀리 보이는 하드리아누스 개선문

 

입구에서 압둘라 2세 국왕이 반겨준다.

 

상가를 지나고,

 

푸른 창공에 빛나는 하드리아누스 개선문이 멋지다.

 

제라쉬 유적이 다른 로마 유적과 차별화되는 포인트는 도시 전체가 유적이라는 점인데, 그것도 부분적인 유적이 아닌 완성된 고대 도시이며, 후대 건축물로 크게 덮이지 않아서 원형 보존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이는 사막 모래에 묻혀 있다가 발굴되어 훼손이 적었던 점도 한몫한다.

 

하드리아누스 개선문(Hadrian's Arch)은 서기 129~130년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방문을 기념해 세워졌다.

 

도시 입구 역할을 하며, 제라쉬의 웅장함을 처음 마주하는 장소이다.

 

고대 경기장인 히포드롬(Hipodrome)으로 들어간다.

 

 

개선문 뒤에 있는 고대 경기장인 히포드롬(Hipodrome)은 길이 260m, 폭 80m로 16,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고대 초기 그리스와 로마에서 타원형으로 조성했던 경주 혹은 경마장을 히포드롬이라고 했으나, 후기에 들어와 전원 빌라 정원에 경주장 형태의 타원형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유행하면서 히포드롬은 '타원형 정원'이라는 뜻으로 변용되었다.

 

마치 영화에서나 보았던 전차 경기장 같았다.

 

상당히 넓다.

관람객이 되어 본다.

 

저 멀리까지 보이는 유적이 상당하다.

 

 

 

성벽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노랑사리풀 '히오시아무스 아우레우스(Hyoscyamus aureus)'는 성지의 어느 곳에서나 잘 자라는 성지식물로 특히 돌틈을 좋아하므로 성벽 틈에서 잘 자란다.

 

제라쉬 유적지는 로마의 전형적인 격자형 도시구조를 보여주는 곳으로, 100개의 기둥이 있었다는 이 도시는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 시기에 세워졌다.

길이 3,456m의 성벽은 4개의 문으로 제라쉬를 둘러싸고 있었으며, 제라쉬 계곡(황금강)이 도시를 동서로 나누고 두 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오늘날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도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카르도(Cardo)와 디카마노스(Dycamanos)라는 두 개의 주요 기둥거리, 두 개의 신전(제우스 신전과 아르테미스 신전), 남쪽과 북쪽 두 개의 극장, 동쪽과 서쪽 두 개의 목욕탕, 광장과 시장, 님파이윰(Nymphaeum: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물의 요정 님프에게 바친 신전), 시메트리스(Symmetries), 보호소, 상점, 개선문, 배수로와 같은 거대한 기념비적 구조물이다.

 

역사적으로 제라쉬는 데카폴리스(Decapolis) 연맹의 일원으로 인구는 약 2만 명이었으며, 서기 130년에는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Publius Aelius Hadrianus)가 방문하였다.

 

이곳은 서쪽시장과 군대 막사(The west Souk and Military Barracks)가 있던 지역으로 당시에는 도시를 오가는 여행객들로 붐볐을 것이다. 따라서 이곳은 훌륭한 상업중심지였으며, 2세기에는 적어도 4개의 상점이 세워졌다. 바위를 부분적으로 파내어 만든 이 상점들은 목공예 장인들이 사용하였으며, 그들이 쓰던 도구들이 이곳에서 많이 발견되었다.

 

상점 앞 열주 위에는 작지만(100㎡) 부유한 주택 2채가 있었고, 이 건물 전체는 3세기 후반에 도시를 습격한 약탈자들이 일으킨 화재로 파괴되었다.

 

습격 이후 도시를 요새화하기 위한 건설이 시작되었고, 이때 도시 성벽이 건설되었다. 서쪽 시장의 유적은 남문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이를 평탄화하고, 그 지역 중앙 안뜰 주변에 작은 군대 막사를 건립했다. 여러 차례 개조된 후 이 막사는 아마도 7세기에 버려졌을 것이라 한다.

 

제라쉬의 메인광장인 원형광장(Oval plaza)에 도착한다.

 

 

높은 곳에는 제우스 신전과 원형극장이 자리잡고 있다.

 

노랑사리풀이 화사하다.

 

원형광장은 잘 보존된 그리스-로마식 도시 유적 중 하나이며, 제라쉬 유적군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약 90*80m의 타원형 광장인데, 이오니아식 기둥 56개가 타원형으로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주변을 둘러싼 이오니아식 기둥들이 장엄한 분위기를 형성하며, 사회, 상업, 종교 활동의 중심지였다.

 

제우스 대신전(The Great Temple of Zeus)으로 올라간다.

제우스 대신전은 원형광장 위쪽에 자리한 신전으로 고대 로마시대에 건립되었으며, 높은 기단 위에 세워져 있어서 도시 전체를 내려다보는 종교적 권위와 도시의 신성함을 상징한다.

 

15개에 달하는 코린트식 기둥이 신전 앞면을 장식하고 있는데, 현재는 14개의 거대한 기둥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제우스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올림포스 12신 중 하나이며, 크로노스와 레아 사이에서 태어난 6남매 중 막내로, 12신 중 누이이자 아내인 헤라와 더불어 가장 지위가 높고 하늘을 지배하는 신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주인이자 지배자(혹은 우주를 주관하는 하늘과 땅의 통치자)이며, 곧 만물의 아버지인 동시에 올림포스의 주신(主神)이자 우주를 주관하는 신들의 왕이다. 율법, 정의, 우정, 힘을 관장한다.

 

제우스 대신전은 5세기에 해체되었고, 도시 주변의 교회를 짓는데 사용되는 자재의 채석장으로 전락했다.

 

연극, 음악, 정치 집회 등 다목적 공간인 원형극장으로 들어간다.

 

마침 악사가 백파이프 연주를 하고 있다. 음향이 뛰어나 지금도 공연이 열린다는데, 극장 중앙에 서면 작은 목소리로도 극장 전체에 크게 울려 퍼진다고 한다.

 

원형극장은 32개의 원형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서기 1세기경에 건립되었으니 2,000년이나 지났지만 보존 상태는 아주 양호하다.

 

유유자적 한가롭게 즐기기 좋은 곳인데, 여행자의 발걸음으로는 그럴 시간이 없다는 게 좀 아쉽다.

 

 

멀어져 간 제우스 신전과 원형극장

 

노랑노랑한 꽃이 유혹한다.

 

열주 기둥들이 엄청나다.

십자형 대로인 카르도(Cardo)와 디카마노스(Dycamanos)를 장식했다니 그 규모가 상당하다.

 

 

 

 

 

 

 

성벽 틈에서도 잘 자라는 노랑사리풀

 

아르테미스 신전(Temple of Artemis)으로 올라간다. 이 신전은 제라쉬의 수호 여신인 아르테미스에게 봉헌된 신전이다.

 

이 신전은 2세기에 건설이 시작되었지만 완성되지는 못했고, 계획된 총 32개의 기둥은 12개만 세워졌다고 한다.

 

기둥 끝의 조각이 무척 섬세하다.

 

관리인이 파노라마로 찍어준 사진이다.

 

아르테미스(Artemi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올림포스 12신 중 한 명으로 사냥, 숲, 달, 처녀성 등과 관련된 여신이며, 여성의 출산을 돕고 어린아이를 돌보는 여신이기도 하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르테미스는 은활과 금화살을 들고 숲에서 사슴이나 곰 같은 짐승을 사냥하는 활기찬 처녀신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뒤돌아 본 아르테미스 신전

 

 

자세히 들여다봐야만 꽃이 보인다.

 

파로니키아 프란치스카나(Paronychia franciscana), 제누스 파로니키아(Genus paronychia), 파로니키아 아르겐테아(Paronychia argentea)라 한다.

 

열주거리(Cardo Maximus)로 와서,

 

길이가 약 800m나 되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로마식 주 도로이다.

포장된 돌길에는 당시의 전차 바퀴 자국이 일부 남아 있다고 한다.

 

조가비 문양

 

이쪽은 동서로 뻗은 디카마노스(Dycamanos)이다.

 

 

열주 거리가 십자형으로 뻗어 있었다고 하니 대단한 도시였다.

 

제라쉬 유적을 걷다보면 내가 마치 고대의 로마 도시를 걷고 있는 듯한 묘한 감흥이 느껴진다.

다시 돌아 온 원형광장

 

제우스 신전과 원형극장

 

 

국왕 부부와 왕세자 그림이 있다.

 

제라쉬에 대한 안내판에서,

 

 

더운 날씨에 즉석에서 갈아주는 시원한 석류 쥬스로 목을 축인다.

 

상가 입구에서도 반겨주는 국왕부부와 왕세자

 

차창 밖으로 제라쉬 유적을 바라보며 요르단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무사히 소화했다.

 

근처의 아르테미스 레스토랑으로 이동하여,

빵 굽는 모습을 볼 수 있게 꾸며 놓았다.

 

쫀득쫀득하고 맛난 요르단 전통 빵으로 식사를 했다.

 

요르단 국왕부부와 2남 2녀의 가족들이 단란하다.

 

상당한 미모를 자랑하는 라니아 왕비(Queen Rania of Jordan)는 1970년 8월 31일생으로 팔레스타인 혈통이며 쿠웨이트 출신이란다. 압둘라2세의 끈질긴 구애를 받은 끝에 마침내 결혼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일부 다처제인 아랍국들의 특성상 요르단 국왕은 부인이 라니아 왕비 한 명이고, 무슬림이지만 왕비와 공주들은 히잡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는 16일간의 이집트-요르단 여행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암만공항으로 향한다.

올리브나무도 안녕!

 

화려한 모스크가 눈에 띈다.

 

이곳은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몰려사는 곳이란다.

 

 

 

 

공항 입구에서 반겨주는 야자수

 

암만 공항의 지붕은 베두인 텐트 모형이라고 한다.

 

지붕의 특이한 모습

 

공항에 도착하니 허걱 5시간이나 지연이란다. 그러면 두바이에서의 항공편은?

 

다행히도 두바이에서의 환승 비행기도 동일한 에미레이트항공이라 다른 비행기 편으로 차질없이 귀국할 수 있었다.

암만에서 두바이를 거쳐 거의 24시간 만에 인천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긴긴 여행의 끝은 언제나 아쉬움과 안도감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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