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여행

사막에 피어난 위대한 문명 이집트 덴데라 신전(Dandara Temple), 룩소르 신전(Luxor Temple)

by 새인1 2026. 2. 27.
반응형

♥♥사랑과 미의 여신 하토르(Hathor)를 위한 덴데라 신전(Dandara Temple)은 에드푸 신전(Edfu Temple)과 함께 보존 상태가 가장 뛰어난 유적이다. 이 신전은 원래부터 하토르여신의 성지로 유명했고 중왕국시대와 신왕국시대에도 세워져 있었으나,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건물은 프톨레마이오스(Ptolemaios)왕조 시기에 세워진 것이다. 프톨레마이오스왕조가 망하고 로마제국 시절에도 여전히 중요한 신전 중 하나였으나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하며 고대 신전들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가 일어났고, 결국 하토르 신전도 버려지고야 말았다. 이후 1800년대 들어서 재발굴이 되었고, 현재는 덴데라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가 되었다. 덴데라 신전은 규모와 정교함에서 모두 뛰어난 고대 이집트인들의 기술력을 보여주며, 특히 천정에 남아 있는 황도 12궁과 천문학 부조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뛰어난 천문학적 지식수준을 보여주며 고대 천문학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2000년 이상된 부조물은 보존이 매우 잘 되어 있는 편이며, 상형문자와 그림을 통해 당시 기술자들의 재능과 상상력, 재치를 상상해 볼 수 있다. ♥♥

 

사랑과 미의 여신 하토르를 위한 덴데라 신전으로 들어간다.

 

대추야자나무가 반겨준다.

 

한참을 걸어 들어간다.

 

이집트 내에서 가장 보존상태가 좋다는 신전이다.

 

그래도 많이 허물어졌다.

 

거대한 탑문은 거의 형체만 알아볼 수 있었다.

 

탑문 앞에 도열한 열주들

 

 

조각이 아직도 선명하다.

 

 

하토르(Hathor)를 상징하는 동물이 암소라서 머리에 두 개의 뿔 사이에 둥근 태양을 상징하는 원반의 관을 쓰고 있는 하토르 여신의 부조가 새겨져 있고, 신전앞을 지키고 있는 스핑크스도 암소 형상이라고 한다.

 

저 진흙벽돌은 나일강의 범람으로부터 신전을 지키기 위해 쌓은 것이라고 한다. 무너지면 해마다 쌓고 또 쌓고 했단다.

​

하토르 여신의 축복을 받고 있는 파라오 모습

 

탑문 기둥에도 양쪽으로 묘사되어 있다.

 

하토르는 고대 이집트에서 가장 사랑받던 여신 중 하나로 역할이 매우 다양하고 성격도 따뜻한 존재로 여겨졌다.

 

천정에는 태양신 라(La)의 눈과 독수리 날개를 가진 태양신을 묘사해 지상을 내려다보는 것을 의미하는데, 후에 이 독수리 날개는 로마시대의 상징을 거쳐 전 유럽과 미국, 아랍국가들의 상징으로 나아갔다.

 

로마시대 트라야누스 황제 시기에 만들어진 맘미시(mammisi)로 하토르와 호루스(Horus)의 자식인 '이히(Ihi)'라는 신이 태어난 생명의 방이라고 한다.

 

유물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전시되어 있다.

​

뒤돌아 본 거대한 탑문

 

신전 기둥들도 모두 하토르 여신의 얼굴이 사면으로 부조되어 있다.

 

신전 곳곳에 새겨져 있는 하토르 여신의 얼굴은 우상숭배를 금하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영향 탓으로 거의 모두 훼손되어 있다.

 

하토르 신전이 유명한 이유는 바로 완벽하게 남아 있는 천정부조 때문이다. 다른 신전들은 천정이 거의 무너진 경우가 많은데 하토르 신전은 부조의 색상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하토르는 사랑, 기쁨, 아름다움의 여신이며, 모성, 출산, 보호의 여신으로 산모와 아기를 지키는 존재이고, 음악과 춤, 술의 여신으로 축제의 수호자이다.

​

또한 파라오가 죽은 뒤 저승에서 그를 맞이해주는 여신이고, 종종 암소의 모습 또는 소의 귀와 뿔을 가진 여성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하토르는 대지의 어머니로 불릴 만큼 포근한 이미지를 가졌고, 구체적이고 실생활에 가까운 역할 덕분에 일반 백성들에게도 인기가 많아서 이집트 전 영역에서 숭배되었는데, 최고의 성지는 바로 덴데라였다.

 

하토르 여신은 어린 파라오에게 젖을 먹이는 사랑과 미의 여신이었으며, 후에 사랑의 신이 이시스(Isis)여신과 합체되는 신으로 변했다.

 

열쇠처럼 생긴 앙크(ankh)는 '생명'을 의미하는 고대 이집트의 신성문자인데, 윗부분이 고리 모양으로 된 십자로 라틴어로는 자루가 달린 십자라는 뜻인 '크룩스 안사타(crux ansata)'라고 불린다.

 

앙크는 투탕카멘 왕의 여러 비문을 비롯한 고대 무덤의 비문에서 발견되며 신들과 파라오들도 앙크를 쥐고 있는 것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건강·행복과 같은 개념을 나타내는 신성문자들의 일부이다.

 

앙크가 신기한 매듭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지만, 그 모양을 통해 보면 원래 의미는 샌들 끈을 가리켰던 것 같다. 십자형이기 때문에 앙크는 콥트 그리스도교 교회의 상징으로 널리 사용되어왔다.

 

기둥 옆에 서서 크기를 가늠해 본다.

 

이집트 창세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신 라(La)의 눈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태양신의 상징인 불사조 베누(Bennu)는 '눈부심 속에 일어서다'라는 뜻으로, 헬리오폴리스(Heliopolis) 신화의 태양신 라(La)의 상징이다. 긴 머리 깃털이 있는 해오라비새의 모습인데 머리에는 항상 해를 상징하는 둥근 공을 올려놓고 있다. 이 베누(Bennu)는 그리스로 건너가 불사조 피닉스(Phoenix)의 전설이 된다.

 

하토르 신전은 천문학과 관련된 신전이라 하늘의 색인 파란색상이 주를 이룬다.

​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는 하토르 여신의 얼굴

 

신전 내부의 장식과 건축양식은 이집트 종교의 오랜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그 시대의 예술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부조들의 몸체도 긁어 놓았다.

 

지성소에는 원래 신상이 놓여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없지만 벽면에는 신들에게 공물을 바치는 파라오의 모습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하토르 여신은 주로 머리에 두 개의 뿔 사이에 둥근 태양을 상징하는 원반의 관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

벽면에 가득한 부조는 파라오가 하토르에게 공물을 바치는 장면, 음악, 춤, 축제를 상징하는 모습들로 가득하다.

 

참고로 이집트 신화를 소개하면,

땅이 기름진 하(下)이집트 중에서도 헬리오폴리스(Heliopolis)는 가장 번성한 도시였으며 도시의 막강한 세력에 따라 신화도 발달되었다. 헬리오폴리스에서 전해지는 창세 신화는 태양신 라에서부터 시작된다. 아주 먼 옛날, 세상에는 검은 물만이 일렁이고 있었다. 소리도 없고 빛도 없는 무한의 공간에 죽은 듯 누워 있는 물을 누 혹은 눈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바로 나일강이다. 어느 날, 고요한 누의 저편에서 언덕이 하나 불쑥 튀어나왔다. 이 태초의 언덕은 견고한 피라미드 계단 형태였다. 그 언덕 너머에서 붉은 태양이 솟아올랐다. 그러자 세상은 곧 환한 빛으로 가득 찼다. 태양신이 태어난 것이다. 태양신은 아침에는 케프리(Khepri), 한낮에는 라(La), 해질녘에는 아툼(Atum)이라고도 불리는데, 이집트인들이 가장 숭배하는 신이다.

 

태초의 언덕 위에 있던 라가 긴 숨을 내쉬자 슈(Shu)와 테프누트(Tefnut)가 태어났다. 슈는 '공기'라는 뜻이고 테프누트는 '물기'라는 뜻이다. 그런데 슈가 태어나자마자 그만 어둠의 물속으로 빠져버렸다. 라는 놀라서 얼른 자신의 눈 하나를 빼서 또 다른 딸 하토르를 만들었다. 하토르는 물속으로 들어가 슈를 구해왔다. 하토르는 그 대가로 영원히 아버지 라 곁에서 라의 명령을 집행하는 여신이 되었다. 하토르는 갓 태어난 아기들을 지켜주는 여신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라가 만들어진 신화는 다양하다. 물속에서 태초의 언덕이 솟았을 때 연꽃이 같이 피어났는데, 연꽃이 벌어지자 거기에 눈부신 아기 모습으로 라가 있었다. 라는 연꽃에 살면서 세상을 창조했다. 한숨으로 슈를 만들고 재채기로 테프누트를 만들었다. 눈물로는 인간을 만들었는데, 인간이 눈물이 많은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닐까? 그런가 하면 꽃잎에서 나온 풍뎅이가 점차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 라가 되었다는 설도 있고, 아침이면 피라미드 너머에서 일어나 세상을 비추는 거룩한 새 베누로 묘사되기도 한다.

 

공기의 신 슈와 물기의 신 테프누트는 오누이지만 결혼해서 부부가 되었다. 신들의 사이에서는 남매끼리 결혼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일이었고, 슈와 테프누트가 오누이 부부 1호로 탄생한 것이다. 둘 사이에서 게브(Geb)와 누트(Nut) 남매가 태어났는데, 그들도 곧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땅의 신 게브와 하늘의 신 누트는 금슬이 얼마나 좋은지 한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게브는 길게 바닥에 눕고 누트는 게브 위에 몸을 포갠 채 가만히 누워 있었다.

 

어느 날 라가 너무 답답해서 세상을 돌아보니 게브와 누트가 너무 꼭 붙어 있었다. 그러니 그 사이에서 다른 생물들이 자라지 못하고 빛이 들어갈 수도 없었다. 라는 생각다 못해 아들 슈를 불러 그 둘을 떼어놓으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슈는 자신의 아이들인 게브와 누트 사이로 들어가 게브를 꾹꾹 밟아 바닥으로 붙이고, 누트를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그러자 하늘과 땅 사이에 빛과 공기가 가득 찼다. 라는 게브와 누트가 다시 만나 세상이 무너지게 될까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라는 1년을 360일로 정하고 게브와 누트는 단 하루도 만나서는 안 된다고 명령했다.

 

그러나 게브와 누트는 라의 명령을 어기고 밤에 몰래 만나곤 했다. 그러다 누트가 임신을 하게 되었고, 그 사실을 안 라는 불같이 화를 냈다.

'내 명령 없이는 어떤 날에도 애들을 낳을 수 없다.'

뱃속에서는 아이가 점점 커지는데 출산해서는 안 된다니, 게브와 누트에게는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누트는 생각다 못해 지혜의 신 토트(Thoth)에게 상의했다.

 

토트는 달의 신 콘수(Khonsu)를 찾아가 내기를 하자고 했다.

'우리 체스 게임을 해서 내가 이기면 당신의 빛을 나눠주고, 당신이 이기면 내 지혜를 나눠주도록 합시다.'

평소 토트의 지혜가 부러웠던 콘수는 흔쾌히 허락했다. 그러나 지혜의 신 토트를 이길 수는 없었다. 결국 콘수는 꽤 많은 빛을 잃었는데 5일 정도 비출 만한 양이었다. 이렇게 해서 1년이 365일이 되었고, 이전까지는 늘 보름달 형태였던 달이 15일 간격으로 점점 작아져 빛을 잃었다가 다시 커지는 주기를 반복하게 되었다.

 

라가 정한 360일 외에 5일을 번 토트는 그 기간에 누트에게 아이를 낳도록 해주었다. 누트는 첫날에 오시리스(Osiris)를 낳았다. 잘 생긴 얼굴에 눈빛도 온화하고 피부도 아름다운 오시리스는 한눈에도 멋져 보였다. 첫째 오시리스가 태어나던 날, 전 이집트에는 하늘의 목소리가 들렸다.

'만물의 주인인 오시리스 왕이 태어났다!'

둘째 날에는 매의 머리를 한 호루스(Horus)를 낳았는데, 나중에 전쟁의 신이 된다. 이시스와 오시리스가 낳은 아들도 호루스인데, 그와 구별하기 위해 누트가 낳은 둘째 아들을 대(大) 호루스라고 부른다.

 

연 이틀을 출산한 누트는 좀 지쳤다. 그래서 잠시 쉬고 있는데 난폭하고 성질 급한 아기가 옆구리를 찢고 튀어나왔다. 바로 셋째 아들 세트(Seth)였다. 세트는 얼굴이 붉고 머리에 뿔이 두 개 달린 모습으로 질투심도 많고 싸우기를 좋아하는 다혈질이었다. 넷째 날에는 이시스(Isis)를 낳았다. 그녀는 우아하고 사랑스럽고 향기로웠다. 말솜씨도 뛰어나고 눈빛도 매혹적이라서 누구든 그녀를 보고 있으면 마법에 걸린 것처럼 좋아하게 되었다. 다섯째 날에는 네프티스(Nephthys)를 낳았는데 그녀는 언니 이시스와 참 많이 닮았다. 우아하고 아름다웠고 곱고 향기로운 머릿결을 가졌다. 그러나 이시스보다는 조용한 편으로 남의 눈에 띄는 것을 꺼려했다.

 

이들 다섯 쌍둥이는 어릴 때 사이가 참 좋았다. 특히 오시리스와 이시스는 뱃속에서부터 손을 잡고 있었다. 그 둘은 서로 사랑하고 있었고 커서 결혼을 한다. 그리고 세트는 막내 동생 네프티스와 결혼한다. 처음에는 사이가 좋았던 오시리스와 세트는 자라면서 조금씩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사실 오시리스는 세트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에게 사랑받는 형 오시리스를 동생인 세트가 일방적으로 시기하고 미워하기 시작한다. 이집트 신화의 절정은 바로 세트의 질투로부터 시작된다.(출처: 다음백과)

 

사다리를 타고 지하로 내려오니 통로가 비좁다.

 

비좁은 통로에는 부조가 더 선명하다.

 

연꽃에서 솟아 나오는 뱀을 호루스가 지켜보고 있다.

​

이게 바로 외계인이 전수한 덴데라의 전구라는데, 연꽃에서 뱀이 나오는 모습으로 생명의 힘을 강조한 것이라고 한다.

 

여러가지 탄생에 관한 벽화가 가득하다.

 

신들의 왕의 자리를 물려받은 오시리스는 비록 남매간이지만 이시스와 부부의 연을 맺고, 인류에게 필요한 기술을 알려주며 태평성대를 누린다. 한편 네프티스와 결혼한 세트는 가정은 무시하고 오시리스가 차지한 왕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빼앗기 위해 혈안이 된다.

 

어느 날 세트는 파티를 열고 선물을 핑계삼아 준비한 화려한 석관에 오시리스가 들어가게 한 다음 뚜껑을 닫아버리고는 나일강에 던져버린다. 석관은 나일강 줄기를 따라 지중해를 지나고 페니키아(현 레바논)의 비블로스(Byblos)항구의 나무에 부딪쳐 멈춘다. 그러자 갑자기 나무가 기적처럼 훌쩍 자라더니 줄기로 석관을 가두어 버린다. 그런데 그 나무에서 아름답고 좋은 향기를 내뿜자 이를 본 비블로스왕이 그 나무를 베어다가 궁전의 기둥으로 삼았다.

 

한편, 남편을 잃은 이시스는 상복을 입고 슬픔과 절망속에 남편의 시신이 담긴 관을 찾아 나선다. 온 나라를 수소문한 끝에 나일강의 하구에서 관을 보았다는 사람들과 아누비스(Anubis)의 도움을 받아 오시리스의 관이 비블로스의 왕궁에 있다는 것을 알아 내었다. 거기서 신비로운 기둥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새로 태어난 왕자의 보모로 취업한다. 그런데 왕자가 매우 허약한 것을 보고는 불멸의 생명을 불어넣고자 불속에 눕히는 의식을 거행하려는 순간에, 왕자의 어머니가 이를 목격하게 되면서 그녀의 주문은 깨져버린다. 이에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왜 이곳에 왔는지를 밝히게 되고, 허약했던 왕자가 불멸까지는 아니지만 건강한 모습으로 바뀐 것을 보고 왕은 그녀의 소원을 들어준다.

​

이시스는 기둥에 갇혀 있는 관을 꺼낸 후 그 기둥을 정화시키는데, 이후 그 기둥을 '오시리스의 기둥(Pillar of Osiris)이라 한다.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관을 가지고 이집트로 돌아가는 중에 세트에게 발각되고, 열 받은 세트는 다시 오시리스의 시체를 14조각으로 찢어 누구도 찾지 못하게 멀리멀리 사방으로 흩뿌린다. 힘들게 찾은 남편을 다시 잃은 이시스는 이번에는 여동생 네프티스, 자칼의 신 아누비스와 함께 찾아나서고, 나일강에 버려져 물고기가 삼켜버린 성기만 제외하고 오시리스의 시신 조각을 모두 찾는다. 그리고 나무로 성기를 만들어 붙이고 마법의 주문을 외우며 조각난 오시리스의 시신을 합치고 부활시키는데 성공한다.

​

그렇게 부활한 오시리스는 이시스와 하룻밤을 지내고 맡은 바 임무를 다하기 위해 지하세계로 떠난다. 그리고 얼마 후 이시스가 아들을 출산하는데, 이 아들이 바로 하늘의 신이자 오시리스 왕의 자리를 승계할 수 있는 적통인 호루스이다. 호루스는 성인이 되자 삼촌인 세트와 신들의 전쟁을 벌여 승리한다.

 

지성소

 

앙크 문양

 

2층으로 올라간다.

 

빛을 받아들이는 채광구

 

 

이곳의 벽화는 많이 훼손되었다.

 

오시리스의 부활을 상징하는 예배당으로 들어간다.

 

태양신 라의 눈과 독수리 날개를 가진 태양신 부조

 

고대 이집트의 석재 결합 방식은 석회암을 평평하게 다듬은 다음 모르타르 없이 돌끼리 정확하게 맞물려 쌓는 방식이어서 오랜 세월에 저렇게 틈이 벌어지면서 마모되고 홈이 파인 것이란다.

 

천정에 새겨진 누트(Nut)여신은 이집트 신화에서 하늘, 창공을 상징하는 여신으로 천정에서 땅을 덮고 있는 형태라고 한다. 누트는 배(과일) 모양으로 생긴 물동이를 머리에 인 모습으로도 표현되었는데, 누트의 상형 문자명(名)이 이 모습이다. 누트는 때로 암소로 묘사되기도 했는데, 그것은 이 여신이 태양 신이요 창조신인 레(Re)를 등에 업고 하늘로 가기 위해서 취한 모습이 암소였기 때문이다. 누트는 새해를 맞기 전 특별한 5일에 오시리스·호루스·세트·이시스·네프티스 신을 차례로 낳았다.

 

그 유명한 덴데라 천궁도(Dendera Zodiac)의 원본은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이집트 정복시에 떼어가고, 이것은 석고로 만든 복사본이라고 한다.

 

일년 360일을 10일 간격으로 36개의 별자리를 원형으로 배치한 것인데, 대략 티베리우스 황제 재위기의 별자리 모습이라 한다.

 

오시리스방 사면에는 미라를 만드는 과정이 상세하게 새겨져 있다.

​

고대 이집트에서는 죽은 자의 시신이 남아 있으면 내세(사후세계)에서 부활할 기회가 주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에, 시신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시신의 심장을 제외한 내장을 제거한 후 미라(Mira)를 만들었다.

 

오시리스(Osiris)는 하(下)이집트에 있는 부시리스의 지방신이었다고도 전해지며, 지하 세계의 다산의 화신이라고도 하고, 단순히 신성시된 영웅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BC 2400년경에는 분명히 다산의 신과 죽은 왕들의 화신이라는 2가지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2가지 역할은 왕권을 신성시하던 이집트 교리와 관련되어 있었다.

 

오시리스는 죽은 왕의 아들, 즉 살아 있는 왕은 하늘의 신인 호루스와 동일시되었다. 오시리스와 호루스는 부자간이었고,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아내이자 호루스의 어머니였다. 호루스의 적이었던 세트가 오시리스를 죽인 후 몸을 14조각으로 찢어 땅에 던져버렸다고 한다.

 

이시스와 네프티스 자매는 시체 조각들을 찾아 남근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묻어주었고, 남근이 오시리스에게 새 생명을 주어 오시리스는 지하세계의 통치자가 되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오시리스는 디오니소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오시리스는 한 손에 지팡이를, 다른 한 손에 도리깨를 쥔 채 팔짱을 끼고 있는 미라의 형상으로 묘사되었다. 턱수염을 땋아 내렸고 상이집트의 흰 왕관에 붉은 깃털 2개를 꽂은 아테프 왕관(Etef Crown)을 머리에 쓰고 있다.

 

그리고 호루스는 세트와 싸워 이겨 이집트의 새 왕이 되었다. 그리하여 왕권신성이라는 개념이 신화적인 교의 속에 수립되었다. 오시리스는 죽은 자들의 지배자일 뿐 아니라, 식물의 싹이 나는 것에서부터 나일 강의 연례적인 범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지하세계로부터의 생명을 부여하는 힘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BC 2000년경부터는 왕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죽으면 오시리스와 동일시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오시리스가 되는 과정이 부활을 의미하지는 않는데, 이는 오시리스조차도 죽어서 다시 살아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것은 사후세계와 현세에서 자손들을 통해 생명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처럼 일반화된 형태로 오시리스 숭배는 곧 이집트 전역으로 번졌으며, 종종 지방적인 풍요의 신들이나, 지하세계 신들에 대한 숭배와 결합되기도 했다. 오시리스를 따르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특정한 숭배 형식을 통해 유지되었고, 이것은 헬레니즘 시대에는 오시리스 비교로 전해졌다.

 

천정에 뚫린 환풍구

 

 

옥상으로 통하는 계단도 무너졌다.

 

틈이 벌어지는 옥상의 돌들이 지탱하는 것도 신비스럽다.

 

사방으로 넓은 신전의 모습도 경이롭다.

 

신전으로 들어오는 탑문

 

모래 속에 묻혀 있는 신전 모습을 보니 나일강이 쌓아 놓은 모래의 두께가 엄청나다.

 

다시 1층으로 내려간다.

 

신전 벽면에는 클레오파트라와 아들 카이사리온(Ptolemaeus Caesarion)이 하토르 여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카이사리온은 클레오파트라 여왕과 로마의 율리우스 시저(Julius Caesar)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 시저가 암살당한 후 안토니우스와 손잡은 클레오파트라가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에게 패전 후 자살하고, 아들에게 파라오 지위를 물려주었으나 결국 아들도 옥타비아누스에게 죽임을 당해,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끝나고 로마황제의 총독 지배 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푸른 하늘로 솟구치는 탑문이 멋지다.

 

갯나팔꽃은 잎모양이 염소의 발처럼 생겼다고 라틴어로 '염소의 발'이라는 뜻의 'Ipomoea pes-caprae'이다.

 

잎은 나비모양이고 꽃은 작은 나팔꽃 모양이다.

​

상가를 지나서 나간다.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멋지다.

 

나일강을 건너며,

 

덴데라도 풍요로운 지역이다.

 

 

 

 

 

룩소르로 돌아오니 어느덧 노을이 붉게 물든다.

 

차창으로 스쳐가는 룩소르 신전(Luxor Temple)은 시내 한복판에 있어서 관람하기가 용이하다.

 

룩소르 신전은 기원전 약 1400년경 전 고대 이집트 신왕국 시대의 아멘호텝3세 파라오부터 람세스2세 시대까지 약 200년 동안 만들어진 신전이다.

 

룩소르 신전은 로마제국 시대에 아랍 세력의 침입을 막기 위한 요새로도 사용되었고, 람세스2세가 건립한 오벨리스크 2개가 있었으나 하나만 남아 있으며, 다른 하나는 현재 프랑스 파리의 콩코드광장에 세워져 있다. 19세기 이집트 통치자였던 무하마드 알리가 프랑스 왕 루이 필립에게 선물했기 때문인데, 그 댓가로 받은 시계가 무하마드 알리 모스크에 설치되어 있다.(앞서 포스팅 함)

 

또한 룩소르 신전은 아문신에게 바치는 성소인 동시에 아멘호텝3세(Amenhotep Ⅲ)가 태어난 분만실이기도 하여 파라오의 탄생을 묘사한 부조가 걸려 있다.

 

룩소르 신전 탑문에 세워진 석상들은 람세스2세의 석상이며, 이 신전에는 람세스2세의 석상들이 가장 많다.

​

아멘호텝3세(Amenhotep the Magnificent Ⅲ)는 이집트가 가장 부유했던 시기를 다스린 왕으로서 전쟁도 거의 없었고, 나일강이 풍요로움을 가져다 주어 신과 동등한 존재가 되고자 한 왕이었다.

 

그는 전쟁보다도 건축과 신앙을 통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는 카르낙 신전의 대열주실을 처음으로 확장했는데, 신전은 그에게 단순한 경배의 장소가 아니라 왕이 신과 동등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룩소르 신전은 오페트축제(Opet Festival)가 열리는 장소로 유명하다. 이 축제에서는 신의 상징과 파라오가 신성한 의식을 함깨 하며, 왕권과 신의 힘을 재확인하는 축제로 나일강을 따라서 신상과 왕의 행렬이 이어지는 큰 종교적 행사였으며, 고대 테베(룩소르)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룩소르 신전 근처에 있는 무슬림 모스크에 불이 켜졌다.

 

앞서 포스팅한 카르낙 신전과 스핑크스길로 연결되었던 카르낙 신전의 부속 신전이었다.

 

그래서 나일강이 범람할 무렵이 되면 카르낙 신전에 모신 신들을 배에 태워 룩소르 신전으로 옮기는 의식을 치렀는데, 이 의식이 오페트축제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카르낙 신전에서 1년 내내 태양신 아문신을 모셨다면, 룩소르 신전에서는 1년에 단 한 번 오페트 축제기간에만 아문신을 모셨다고 한다.

 

룩소르 신전 열주전은 높이가 16m인 기둥 14개가 늘어서 있다.

 

 

이 열주는 연꽃 문양이라고 한다.

 

파피루스(Papyrus)를 모티브로 만든 64개의 열주들이 삼면을 둘러싼 형태로 세워졌다.

​

밤에 보는 룩소르 신전의 야경이 매우 아름답고 고혹적이라고 하는데, 우린 마차투어를 하느라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윈터 펠리스호텔도 지나고,

 

룩소르 엠블렘

 

마차투어를 하면서 숙소로 간다.

 

 

중간에 마부가 정차하고 쥬스도 주며 사진도 찍어준다.

​

마차 덮개에는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앙크 장식이 매달려 있다.

​

뒷골목도 살펴보고,

 

과일, 야채가게도 지난다.

 

멀리 모스크엔 불이 밝혀지고,

 

마부와도 인증샷

 

달리고 달려서,

 

나일강 크루즈 호텔로 돌아온다.

 

시설도 꽤 괜찮았다.

반응형